4월 6일부터 한 달간 가파도 청보리축제가 시작됩니다. 한 달 전부터 주민회의를 통해 축제를 점검하고, 심사받고, 축제위원들을 선정하고, 무대와 축제시설들을 설비하고, 소방·의료·치안 등을 점검하고, 다들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청보리 도정공장에서는 보리쌀을 도정하여 포장하고, 마을 주변을 청소하느라 온 마을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이제 사람의 일을 마치고, 하늘이 도와주길 기다립니다. 가파도는 섬이라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헛수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날씨여, 쾌청하라. 파도여, 잠잠하라.
공교롭게도 축제기간과 총선기간이 겹치고, 4·16 10주년과도 겹칩니다. 제주도에서는 4·3이 있으니 마냥 즐겁게 보낼 수만은 없습니다. 원래 축제를 뜻하는 카니발의 어원은 ‘카르네(고기여)’와 ‘발레(안녕!)’에서 왔다고 합니다. 슬픔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기간이라 술과 고기를 금지하기 전에, 며칠 동안 실컷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간이 바로 카니발입니다. 즉, 축제는 슬픔을 기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즐기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슬픔과 기쁨이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시기에 나는 가파도에 있습니다. 나로서는 슬픔은 슬픔대로 깊이 간직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흥성하게 지내는 양동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습니다. 초상집에서 웃을 수 없고, 잔칫집에서 울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우선 4월 5일에는 대정읍에 나가서 총선 사전투표를 할 것입니다. 행여나 본투표 시간을 놓칠 수 있으니 미리미리 나의 권리를 행사할 생각입니다. 이 투표를 통해 나의 슬픔이 근원적으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슬픔의 고리 중 큰 것 하나는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양시가 아니라 서귀포시민으로 처음으로 하는 투표입니다. 공보물을 잘 검토하고, 잘 따져서 지혜롭게 투표하겠습니다. 내 투표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삶의 일부분은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겠습니다.
4월 16일이 되면 세월호 추모행사에 갈 수는 없겠지만, 한 끼는 굶겠습니다. 한 끼 굶는다고 티날 몸은 아니지만, 굶는 시간 동안 1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가파도 선착장 한 귀퉁이에 노란 리본이라도 걸어놓겠습니다. 나만의 의식이 될지 가파도민들도 함께 하는 의식이 될지는 모르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바람이 되어 날아가는 아이들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는 4월 28일까지 진행됩니다. 주말에는 아마도 관광객들로 꽤나 흥성한 풍경이 그려지겠지요. 유채꽃은 서서히 지기 시작했고, 청보리는 아직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축제 기간에는 온갖 꽃들이 벌판에서 골목에서 자신의 생을 예찬할 것입니다. 고양이들도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거리를 산책하겠네요. 평상시보다 훨씬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만, 친절함과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겠습니다.
혹시 가파도에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매표소에 들러서 아는 척 해주세요. 가끔 고양시에서 오시는 분들을 만나면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더라구요. 저는 4월 축제를 모두 마치고 5월 초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 고양시로 잠시 올라가려고 합니다. 5월 초에 고양시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지고, 생활이 조금은 나아지고, 세상이 조금은 정상으로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