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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5. 2024

오늘 : 참치캔을 끊다

2024. 5. 25.

1.

한 달 전쯤 가파도에 고양이 급식이 끊어진 때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먹이던 사료는 없고, 그나마 있는 것은 비상용, 주말특식용으로 마련해 둔 고양이 참치캔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침마다 참치캔을 따줬는데, 어찌나 잘 먹던지. 새벽마다 방충망을 긁으며 야옹거리는 바람에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다. 특히 어미 고양이 감자의 성화가 극성이었다. 새끼 고양이 카레는 어미의 성화에 화음을 넣다가, 참치캔을 따주면 서로 마주 보며 맛있게 나눠먹는 것으로 자신의 몫을 챙겼다. 시위는 어미가 하고, 떡고물은 새끼가 챙기는 묘한 분업조였다.


문제는 고양이 건식사료가 마련되어 이를 밥그릇에 채워놓아도, 어지간해서는 건식사료에 입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마당 고양이 감자와 카레가 건식사료를 먹지 않으니, 동네 길 고양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감자와 카레는 버젓이 사료가 채워져 있어도 나만 보면 식사료인 참치캔을 따 달라며 주위를 돌고, 바지를 끌어 당기고, 무릎으로 기어올랐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2.

결국 고양이의 귀엽고 절박한 표정을 외면하고 건식사료만 챙겨주는 것으로 식습관을 바꿨다. 참치캔은 주말에만 특식으로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휑하니 가버리더니 건식사료만 있다는 것을 눈치챈 감자가 밥그릇에 사료를 으적으적 깨 먹기 시작했다. 감자가 먹자 카레도 어미를 따라 사료를 먹었다. 맛은 어쩔지 모르지만 그것이 주식이니 주식으로 식습관을 들여야 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참치캔을 따달라고 나만 보면 성화다. 나는 눈을 딱 감고 모른 채 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따주던 참치캔을 따주지 않는 인간동물이 얼마나 이상하랴. 처음부터 잘해주지 말던지, 잘해주었다가 외면하는 것은 무슨 처사인가? 고양이 입장에서 보자면 성질을 부릴 만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참치캔으로 주식을 대체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


3.

축제 기간 동안 자주 술과 고기를 먹고 마셨다. 습관이 되다 보니 술을 먹지 않으며 궁금해지고 주변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잦은 야식으로 기껏 빼놓은 살이 다시 쪘다. 입에 달고 좋은 것이 몸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양이의 참치캔을 끊듯이, 나도 술과 고기를 끊어야겠다. 주말에 특식으로 먹이듯,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음주를 줄여야지. 다시 고양이도 나도 건강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겠다.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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