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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7. 2024

오늘 : 감자 새끼 미니

2024. 5. 27.

1.

감자가 새끼를 낳아 방충망으로 삼색고양이를 넣으려고 했다가 내가 쫓아낸 이야기는 지난번에 이야기했다. (4월 24일자 일기) 감자가 몇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로 한 번도 새끼 고양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제 보일러실에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분명 감자의 새끼였다. 그런데 이 새끼 고양이는 숲 속 어두운 공간에서만 자라서 그랬는지, 보일러실에서도 가장 구석에 어두운 공간에 몸을 숨긴 채 나오지 않았다. 겨우 끄집어내어 고양이 상자에 넣어 줬는데, 금세 사라져 버렸다.

2.

새끼 고양이는 카레처럼 치즈테리종이었다. 노란색 바탕에 갈색 줄무늬 고양이. 하도 작아서 그 새끼 고양이의 이름을 미니라고 지었다. 그 미니의 울음소리는 집 앞에 숲 속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감자와 카레는 그 고양이를 자신이 묵고 있는 마당과 보일러실로 데려오기 위해 꽤나 노력을 했다. 숲 속에는 먹을 것이 없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최소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니를 숲 속에서 발견한 것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제저녁이었다. 숲 속에서 숲 밖을 바라보면 계속 아기 울음을 울었다. 이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감자와 카레가 미니의 구출작전을 펼쳤다. 밖에서 나오라고 울기도 하고, 숲 속으로 들어가 같이 살자고 설득도 하는 것 같았다. 마침 감자가 미니를 물고 나왔다. 물고 나와서 보일러 실로 데려가려 했지만 미니는 요지부동, 뻗대고 들어가려 하지 않다가 도로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를 지켜보는 나도 안타깝고, 감자와 카레도 안타까워했다. 미니는 혹시 감자와 카레의 새끼인가? 모양새를 보아하니 카레를 쏙 빼닮았는데, 형제지간인지, 부자지간인지는 모르겠다. 어미와 자식 사이에서 새끼를 낳는 것이 고양이 세계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니까. 인간에게는 근친상간이지만, 자연계에서는 그런 윤리가 없다. 발정기가 되면 새끼를 배고 낳는 것이 자연의 이치니까.

3.

한 번 밖으로 나와 본 미니는 분명 다시 나올 것이다. 미니를 위해 작은 상자 하나를 더 마련해서 보일러 실에 놓아두었다. 감자에게는 츄르를 하나 까줬다. 참치캔은 주말에만 주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보다는 용량이 적은 참치 츄르를 까주며, 다음번에는 꼭 미니를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하자고 부탁했다.


"감자야, 미니뿐 아니라 네가 낳은 새끼 고양이 모두 데리고 나와라. 지난번에 삼색 새끼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니? 살아있는 새끼들은 모두 데리고 나와줘."


츄르를 먹이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인간의 말로 감자에게 말했다. 말이야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마음이라도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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