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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02. 2024

오늘 : 핥고 물고, 고양이 사랑법

2024. 6. 2.

1.

우리집 마당 냥이 감자와 카레는 모자지간이다. 처음 왔을 때는 아들 카레가 어미 감자보다 훨씬 작았는데, 이제 둘의 덩치는 비슷비슷하다. 어찌 보면 카레가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출근하며 이들도 동네로 출근한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내 자전거 소리를 알아 들었는지, 발소리를 알아 들었는지, 내 냄새를 맡았는지 순식간에 나타난다.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들의 행동반경이 그리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기침소리를 듣고 문 앞에서 기다린다. 저녁에 퇴근하며 내가 오는 소리를 듣고 마당에서 기다린다. 나는 퇴근하면 곧장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린다. 이들은 내가 멍 때리는 동안 따뜻한 마당에서 배를 뒤집고 누워있거나, 자신의 털을 고르고, 내 주변을 서성이거나, 얌전히 앉아 나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서로 몸을 어루만지며 스킨십을 한다. 잠시 동안 비비다가 이내 그레코로망식으로 레슬링을 하다가 상대방을 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잔잔히 나중에는 격렬하게 서로 엉켜 붙잡고 늘어지다가 냥이 펀치를 날리기도 하고, 뒷발차기도 한다. 싸움인지 놀이인지 모르는 이 몸짓들은 결국은 물어뜯기로 판가름 나고 진 놈은 잽싸게 몸을 피하는 것으로 종료된다. (요즘은 감자가 주로 이기는데, 이유는 감자가 카레의 불알 근처를 최후의 일격처럼 물기 때문이다. 성기를 물린 카레는 화들짝 놀라 소리치며 도망친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나 언제 그랬나는 듯이 다정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지낸다.

2.

매일 출퇴근하며  이 모자지간의 애정인지 결투인지 모르는 이 행각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로를 안아주고 핥아주고 물고 빨고 하는 이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주고 핥고 물고 빤 시간이 참으로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이들 젊은 모자가 보여주는 이 시리도록 원초적인 사랑의 표현을 잃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면 갑자기 내 신세가 서러워진다. 상처를 주지 않는 이 사랑의 싸움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이 원초적 사랑을 잃어버리고, 말로 행동으로 아픈 상처들을 남기고 살지는 않는가.

감자야 카레야, 너희가 참으로 부럽다. 부디 사랑의 싸움을 멈추지 말아 주길. 이 나이 든 인간동물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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