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아직도 남아있는 강좌가 두 개가 있다. 가파도에 내려오면서 모든 강의를 멈췄지만, 멈추지 못한 강의가 있다. (물론 가파도에서 진행하기에 줌Zoom으로 한다.) 하나는 10년 전부터 지속되는 고양시인문학모임 귀가쫑긋 동양철학반 강좌다. 이 강좌를 진행하면서 나는 고양시의 인문학 강사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경기케이블에서 내 강좌를 찍어 교양강좌프로그램으로 방영하기도 했으니, 지방방송이지만 나름대로 인문학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장자, 맹자 등의 강좌가 방송을 탔다. 동양철학반 강좌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역사와 전통이 깊다. 요즘 하는 강의는 <중년의 철학>이다. 중년의 나이에 필요한 덕목들을 고전에 기대어 풀어가는 이 강의는 듣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내 인생철학을 정리하는 강좌에 해당한다.
2.
두 번째 강좌는 부천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시작하여 문화센터 강좌는 멈췄지만 그때 모였던 멤버들이랑 줌으로 진행하는 강의로 이 역시 1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니 가장 많은 강의가 진행되었다. 동서양철학, 문학 등을 섭렵하며 내 강의의 모든 것이 이 강의에 녹아있다. 이번에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같이 읽는 프로그램을 종강하고, 다음번 강의로 이정우의 <세계철학사 4>를 하기로 계획했었다. 이미 이전에 <세계철학사 1>과 <세계철학사 2> 등 두툼한 이정우의 책을 같이 공부했기에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무난히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세계철학사 4>는 이전의 책에 비해 그 난이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것. 마치 대학논문을 읽는 것처럼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니, 강의로 풀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강의는 어떻게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이 두텁고 어려운 책을 편하게 읽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편안하게 교양을 쌓기 위한 모임이 하드한 스터디 그룹처럼 운영되면 안 되었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강좌를 취소시켰다. 내가 미리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했어야 할 사안을 안이하게 대처한 잘못이었다.
3.
그래서 급하게 다음 강좌를 위한 리스트업을 시작했다. 교양미 넘치되 너무 어렵지 않은 텍스트가 필요하다. 고전은 많이 읽었으니 현대서를 읽고 싶다. 역사, 경제, 철학, 종교를 다루는 책을 검색해 봤다. 역사서로는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 <다시, 역사의 쓸모>가 눈에 띄었다. 날씨도 더운데 가볍지만 울림이 있는 책으로 괜찮아 보였다. 경제학으로는 <위대한 경제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등을 주문했다. 요즘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 종교는 <초역 부처의 말>,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등을 골랐다. 이미 <금강경> <반야심경> 등을 공부한 반이니 무난할 듯하다. 새로 나온 문학작품도 좋은 것이 많지만 일단은 멈췄다.
책들을 알라딘 우체국 택배로 주문하고 책을 받는 족족 속독으로 읽으며 검토하고 있다. 일주일 이내에 결정하여 강의계획서를 올려야 한다. 더운 여름, 매표소는 독서 열기로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