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피해 본도(제주도)로 월요일 막 배를 타고 나갔다. 그렇게 나갔다가 5박 6일을 제주도에서 지내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여름휴가를 진하게 다녀온 셈이다. 오늘 첫배를 타고 들어오니, 가파도는 고요하고 평온하다. 다시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왔다. 나가서는 페북도 브런치도 하지 않았더니 걱정하시는 분이 많다. 그래서 피풍(避風) 보고서를 올리는 겸해서 이 글을 쓴다.
2.
8월 20일(화)
태풍소식이 들러왔지만 오전배 두 척이 떴다. 내가 가파도에 있다면 배표를 끊어야 했지만, 이미 본도로 들어온 상황이라 가파도에 있는 전매표원에게 대체 근무를 부탁하고, 나는 어제 제주도로 나온 작가분들과 함께 아는 화가를 만나보러 차에 오른다. (어제 가파도 사무장의 차를 빌려서 편하게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같이 성인동화를 쓰기로 했기에 작품구상을 하고, 작품에 들어갈 등장인물과 삽화 등을 이야기하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삽화가는 제주도에서 유명한 조각가이기도 하다. 아직은 발표할 정도로 구상이 진척되지 않아, 신비주의 컨셉으로 여기까지 정보 공개.^^
3.
8월 21일(수)
오전에는 고양시에 김한수 작가가 소개한 이순호 시인을 만나러 남원읍 '열권의 책방'을 찾아갔다. 도시에서 일하다가 제주도 고향으로 내려와 집을 짓고, 책방과 1인출판사를 차려 살고 있다. 그 본업으로는 생활이 유지가 안 되어, 새벽마다 골프장 잔디를 깎는 알바를 하는 이순호 시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핵심인 즉, 집을 짓자 마라. 그곳에 묶이게 된다. 책 쓰고 파는 일은 밥거리가 안 된다. (알고 있다.) 시인을 응원하기 위해 책을 대량 구매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좋은 장소에서 1박을 하며 세미나를 해도 좋겠구나 생각한다.
오후에는 구조견, 구조묘, 마라도 고양이 보금자리 '고양이 도서관' 기금마련 <고양이 예술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집사들의 수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러 에땅블루제주갤러리에 다녀왔다. 강사는 고양이 작가로 유명한 할망작가다. 주최는 고양이도서관 추친위원회와 제주동물권행동 나우. 갤러리에 들어갔더니고양이를 주제로 제작된 작품이 많다. 그중에 두 작품을 후원하는 마음으로 구매했다. 전시회가 끝나면 직접 작가분이 가지고 가파도로 오겠다 했다. (원래 고양이 도서관을 가파도에 설립하고자 했는데, 본도에서 먼저 설립하는구나. 서로 연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주최 측과 나눴다.)
4.
8월 22일(목)
별일 없이 모슬포에 있으면서 송악도서관에 가서 사서 선생을 만나 가파도에서 진행하고픈 '제주, 생태, 생명을 위한 작은 책 축제'에 대하여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서귀포에는 송악, 안덕, 산방도서관이 있고, 대표적인 서점으로는 어나더 페이지와 노란우산 책방이 있다. 이들과 내년도에 협력하여 가파도에서 봄이나 가을쯤에 도서관 책방 축제를 열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에 간 김에 책을 대출한다. 특히 가와이 하야오와 나카자와 신이치가 함께 쓴 <불교가 좋다>는 품절된 책인데,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중고로 사려고 해도 못 샀는데, 다시 읽어보게 되어 정말 좋다.
5.
8월 23일(금)
지난 3일은 태풍을 피해 나와서 바쁘게 지냈고, 이제 나의 지정 공휴일은 금요일이다. 벌써 3일을 쉬었는데, 지정 공휴일이라 오늘과 내일 이틀을 또 쉰다. 이왕 쉬는 김에 차량도 빌렸으니 과감하게 동쪽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성산일출봉을 지나 성산포항에서 우도로 가는 배에 오른다. 가파도보다 훨씬 크고 '작은 제주도'라 부르는 우도를 가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가보게 된다.
아, 우도로 가기 전에 제주민속촌박물관에 들렀다. 옛 제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잘 조성해 놓았는데, 예전에 한 번 들렀던 곳이다. (표값이 생각보다 비싸지만 도민할인을 받았다.^^) 그때는 지나가는 관광객으로 들렀다면, 이제는 제주도민이 되어 방문을 한 셈이다. 과거보다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우도로 들어가 차를 타고 해안가 도로를 한 바퀴 돌았다. 작은 제주라 할 만큼 번화하고 관광객이 많다. 순환버스도 있고, 차량도 많고, 오토바이를 변형한 소형차량도 있고, 전동자전거도 다닌다. 걸어서 여행하는 곳이 아니라, 차 타고 여행하는 곳이다. 곳곳에 해수욕장도 있어서 젊은이들로 북적댄다 젊은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카페와 맛집들이 즐비하고, 숙박시설도 많다. 그야말로 관광지다. (그에 비하면 가파도는 관광지라 할 수 없을 정도다.)
하룻밤을 지내고 우도의 작은책방 밤수지 맨드라미 북스토어에 들러 기념으로 책을 산다. 유홍준이 쓴 <나의 제주문화유산 답사기>. 예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목차를 보니 새롭다. (요즘 나는 제주도 문화유산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 그리고 우도의 지역신문 <달그리안>을 챙긴다. 무료로 배포를 하고 있다. 가파도에도 지역신문을 만들 수 있을까? (사무장이 지역신문을 만들고 싶어 하던데, 챙겨주려고 한 부 더 가져왔다.)
6.
8월 24일(토)
5박 6일의 피풍 휴가를 마치고 첫배를 타고 가파도로 들어왔다. 다시 일상의 시작이다. 덥지만 않다면 나는 이 고요하고 평온한 일상이 제일 좋다. 실컷(?) 돈을 썼으니, 이제는 야금야금 돈을 벌어보자. 근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