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태풍 산산이 불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불었던 9호 태풍 종다리가 애기급이었다면, 이번 주 산산은 성인급입니다. 8월은 종다리로 인해 한 5일을 쉬었는데, 연이어 산산으로 인해 4일을 쉬게 되었습니다. 현재 일본 본토를 강타한 산산은 일본 전역을 산산이 부수고 북상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반도도 이 태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살고 있는 가파도는 이로 인해 태풍경보나 풍랑주의보가 떨어져 발이 묶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래도 짬밥이 생겨서 미리 기상정보를 파악하고 대처합니다. 이번에 태풍들은 더위를 거둬가는 태풍이 아니라 몰고 오는 태풍이라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더 더워집니다. 에어컨 없이 지내야하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나름 생긴 지혜가 피풍(避風)을 하는 것입니다. 더위를 피하는 것을 피서(避暑)라 한다면, 피풍은 바람도 더위도 한꺼번에 피하는 행위입니다. 피서하면 휴가가 떠오르지만, 피풍은 생존입니다. 7월에 이어 8월도 월급이 반토막 나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으니, 더위와 바람을 피해 가파도에서 나와 모슬포에 머물면서 즐거운 일을 하려고 마음먹습니다. 지난주에는 유기묘와 유기견, 특히 마라도에서 쫓겨난 고양이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하는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일명 ‘고양이도서관 기금마련 고양이 예술제’입니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지만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제가 가파도는 고양이들의 섬이고, 그 고양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고양이 도서관’을 마련하고 싶다고 쓴 적이 있는데 기억이 나시나요. 그것보다 크고 멋진 고양이 도서관이 북제주에서 곧 만들어집니다. 저도 거기에 한몫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이번주에는 제가 사는 대정읍에 있는 역사유적지와 작은책방들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오랜 기간 동안 수탈과 탄압의 대상이었습니다. 고려, 몽골, 조선, 일제, 해방 후로 이어지는 수탈과 탄압은 제주도를 폐허로 만들었지요. 그 유적들이 대정읍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일제 때 가미가제 특공대가 머물렀다는 알뜨르 비행장과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양민 130명을 가둔 정마트(당시 고구마 창고)와 이들을 끌고 가서 학살한 섯알오름이 모슬포에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가 묵념을 하며 친일과 독재의 시대에 역사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리고 대정읍에서 작은 의미들을 찾아서 책방을 운영하는 어나더페이지, 그림책방노란우산, 소리소문, 책은선물 등의 장소를 순회하며 인사를 나누고 응원과 기념으로 책을 한 권씩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우도에 있는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에서 책을 구입했네요. 벌이도 신통치 않은데 또 책을 사들이냐고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책구입이야말로 독서와 더불어 인간의 가장 숭고한 행위 중에 하나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낄 건 아끼고 아끼지 말아야할 건 써야지요.
이것이 나의 피풍(避風)과 피서(避暑) 방법입니다.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드러내고 독재를 예찬하는 시절에 무더위에 짜증나고 무개념에 화가 나지만, 부정적인 방법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법으로, 파괴적인 방법이 아니라 생산적인 방법으로 나를 보살피는 것이 모든 실천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에서 열이 나면 지성의 힘으로 식히고, 가슴이 차가워지면 열정으로 데우고, 손발이 굳어지면 연대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힘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참, 가파도에서 새로 쓴 책 『장자를 거닐다』가 나왔습니다. 조만간 고양으로 올라가 인사드리겠습니다. 부디 이 무더위를 잘 피하시고, 시원한 방법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