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때문이 아니라, 풍랑주의보로 이틀 동안 배가 뜨지 않을 것이 분명해서, 그리고 찌는 듯이 더울 것이 분명해서 토요일 마지막 배를 타고 모슬포로 피신했다. 방을 잡고 샤워하고, 옷을 간편하게 갈아입으니 살 만하다. 읽을 책을 가져왔고, 사무장에게 차도 빌렸다. 나름 연휴 준비가 끝난 셈.
2.
일요일 늦게 일어나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제주도에 내려와 처음으로 개봉관(메가박스 서귀포점)에서 <베테랑 2>를 봤다. 오락영화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 - 스피드, 액션, 유머, 삶의 애환, 건전한(?) 직업의식, 해피엔딩(?) - 를 갖췄으니 흥행할 것이다. 악역(?)을 맡은 잘생긴 청년의 광기 어린 연기도 볼만하다. 조연들 연기도 균형감을 갖췄다.
극장규모는 작은데 의자는 누워서 발 뻗고 볼 수 있는 고급화 전략을 선택했다. 연휴기간이지만 관객이 꽉 차지는 않아 쾌적하게 관람했다. 영화가 끝났지만 나는 끝까지 남아 화면을 응시한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영화를 같이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다. 끝나고 일어나려는데 보너스 영상이 나온다. 영화가 반전되는 결정적 영상이다. 이 영상을 못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스포일 하지 않겠다.)
3.
영화를 보고 서귀포 올레시장을 갔다. 추석 대목의 흥성거림도 보고 싶고, 주전부리도 하고, 떡과 전도 조금씩 사서 맛보고 싶어서다. 대목이라는데 차롓거리를 장만하는 사람보다 중국 단체 관광객들로 더 붐빈다. 깃발 대신번호표를 들고 있는 안내원들이 낯설다. 여러 팀이 왔나 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비싼 물가에 놀란다. 서민들은 이제나 저제나 고생이다. 갑자기 흥이 사라져 급히 살 것만 사고 빠져나왔다. 차를 타고 모슬포로 돌아오는 길이 후텁지근하다.
4.
모슬포로 돌아와 짐을 풀고 샤워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책 한 권 들고 그늘진 밴치에 앉아 시원한 물을 마시며 독서를 한다.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피서법이다.
저녁에 선배가 모녀동반으로 모슬포 호텔로 왔다. 저녁을 같이 먹으니 예상치 못했던 호사다. 회를 시켜 술 한 잔(?) 하고, 매운탕에 밥을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제주도는 관광지라 그런지 1인분용 회를 안 파니 적어도 2~3인은 돼야 회를 먹을 수 있다. (1인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ㅠㅠ)
잘 얻어먹었으니 근처 카페에서 팥빙수와 과일빙수를 대접했다. 호텔 앞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방에 들어와 누우니 잠이 밀려온다.
5.
월요일 아침, 일어나 일기예보를 점검하니 오늘도 배 뜨기는 글렀다. (내일은 배가 뜨려나?) 강제로 쉬는 휴일이라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느긋하게 보내기로 한다. 밖에는 비가 오락가락한다.
오후에 혹시나 해서 운진항에 가봤다. 비상근무 하는 몇몇 직윈들만 있을 뿐, 대합실이 닫혀 있다. 원래 9월에 정기적으로 쉬기로 한 금요일 휴일을 취소했다. 어차피 태풍 영향으로 강제로 쉬는 날이 많으니 공연히 며칠 더 쉴 필요는 없다. 쉴 때 쉬고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지.
6.
내가 계획한 대로 삶이 살아지지는 않지만, 주어진 삶은 가치 있게 써야겠다.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잘 하는 것이다." -에픽테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