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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r 03. 2020

2020 독서노트 1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 거다. 폭풍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의 눈동자가 더 깊어진 까닭은. 이제 그의 세계는 휩쓸고 지나간 다른 세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더 풍요로워지며,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워진다.

헤어짐이 반드시 안타까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패도 낭비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았을 때, 내 세계의 해안을 따라 한번 걸어보라. 그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껍질이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34쪽)     


                                                                                     * * * *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이른바 지대넓얕) 시리즈로 유명한 채사장이 최근에 쓴 책은 《지대넓얕 0》다. 이원론적 세계관 이전의 일원론적 세계관을 소개하는 이 책은 두께도 만만치 않고 읽기도 만만치 않다. 채사장은 이원론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넘어서는 철학적 방법론으로 일원론을 이야기하면서, 주로 종교세계를 소개한다. 다뤄진 연대기도 우주의 탄생부터 거의 모든 종교를 망라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채사장의 이 책보다는 1년 전에 나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연초에 읽을만한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의 부제는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이다. 앞의 책에서는 작가를 느낄 수 없지만, 이 책은 작가의 모습이, 고민이, 도달한 지점이 선명히 드러난다. 작가 자신이 빠진 책과 작가가 충분히 개입한 책 중 어느 책이 좋은 책이냐는 사람마다 다르고, 주제마다 다르겠지만, 요즘 나는 작가의 모습이 드러난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다른 책이 교양에 해당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차라리 고백과 깨달음에 해당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이 다루는 주제는 철학의 근본 주제이다. 삶과 죽음, 주체와 대상, 앎과 실천. 이 근본 주제가 무겁지 않게 작가의 일상적 삶으로부터 출발하여 동심원을 그리며 확장된다. 이런 접근법도 가독성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채사장은 적어도 대중이 원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언어가 갖는 한계도 명확히 알고 있는 영민한 작가이다. 그와 나는 나와바리(?)가 같아서, 내가 아는 지인은 채사장이 난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아니다. 그는 밀리언셀러 작가고 나는 그냥 생계형 작가다. 그렇지만, 좋은 책은 내 책이 아니더라도 널리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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