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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 조급하지 말자

2024. 12.29.

by 김경윤

1.

한 해가 저물어간다. 법률적으로 계엄은 종료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심리적으로 계엄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통과되었지만, 실질적으로 탄핵이 되기까지는 아직 고비들이 많이 남아있다. 내란의 핵심세력들은 아직까지 활개를 펴고 국회에서 법정에서 거리에서 언론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반민주의 뿌리를 깊어, 발본색원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의 더딤에 조급하지 말자.


2.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하였다. 서구라면 몇 백 년이 걸릴 역사적 과정을 우리는 해방 후 몇 십 년 만에 국민의 피와 땀으로 성장시켰다. 한강 작가 말마따나 '과거가 현재를 구하고, 죽은 자가 산자를 돕는' 역사적 사건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소망하는 꿈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만, 과거의 우리들은 자유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독재 하나를 타도하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을 인고하며 피와 눈물로 싸워왔다. 어둠은 빛을 가렸고 안개는 시야를 흐렸다. 그 어둠 속에서 가슴에 불을 켜고, 안갯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렇게 어둠을 몰아내고 안개를 걷어냈다. 그러니 현재의 더딤에 조급하지 말자.


3.

구경꾼에서 참가자가 되기까지, 불안감이 의지로 바뀔 때까지, 보도블록에서 아스팔트로 내려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시간이 엄청 단축되었다. 보도를 들은 눈과 귀는 손과 발로 금세 변신했다. 몸이 있는 사람은 몸으로,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매체가 있는 사람은 매체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기도로 역사에 참여했다. 나는 이 거센 시민행동의 물결을 믿는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알곡과 쭉정이들은 저절로 가려지고 있다.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되지 않았던 자들은 선명하게 구분되고 있다. 알곡이 다칠까 봐 솎아내지 못했던 가라지들이 저절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명줄을 단축하고 있다. 그러니 심판의 더딤에 조급하지 말자.


4.

남의 삶에 답답해하지 말고, 내 생을 잘 꾸릴 일이다. 나의 하루하루도 역사의 일부분임을 잊지 않을 일이다. 한숨 대신 한 줌이라도 오물을 치울 일이다. 그리고 내 안에 자라는 잡초들을 잘 솎아낼 일이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대청소라도 해서 주변을 정리하고 정돈해야겠다. 그리고 조용히, 담담히, 뜨겁게 새해 아침을 맞이해야겠다. 잊지 않는다면, 몸으로 산다면 우리의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니 역사의 더딤에 조급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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