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쌤엔파커스, 2016)

by 김경윤

느끼고 판단하고 울고 웃는 존재로서 인간인 우리는 현대 물리학이 제공하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벽화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을까요? 세상이 하루살이처럼 금방 사라지는 공간 양자와 물리 양자의 무리이자 공간과 기본 입자를 끼워 맞추는 거대한 퍼즐 게임이라면 우리는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그저 양자와 입자로만 만들어졌을까요? 그렇다면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스스로를 나 자신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가치, 우리의 꿈, 우리의 감정, 우리의 지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요? 이 거대하고 찬란한 세상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일까요?

(...)

인간 존재인 '우리'는 일단 이 세상을 바라보는 주체이고, 이제까지 내가 기록한 현실이라는 사진의 공동 작가입니다. 우리는 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한 조각으로, 하나의 거대한 교환 네트워크에서 이미지와 수단. 정보, 지식을 전달하는 매듭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밖의 관찰자가 아니므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있습니다. 우리도 산 위에 소나무나 은하 별들이 교환하는 것과 똑같은 원자와 광신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17~8쪽)



1.

카를로 로벨리의 베스트셀러 물리학 명저서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138쪽밖에 안 되는 소책자이다. 원제는 '물리학에 대한 7개의 요약 강의'이다. 이를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라고 제목을 바꾼 것은 판매를 위한 전략인 듯 보인다. 어쨌든 이 작은 책자에는 현대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와 현재 상황, 앞으로의 과제 등이 간략히 그러나 매력적으로 다루어진다. 이 책자는 물리학 전공자가 아니라 물리학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예상되는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다. 강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강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론(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두 번째 강의 | 양자역학

세 번째 강의 | 우주의 구조

네 번째 강의 | 입자

다섯 번째 강의 | 공간 입자

여섯 번째 강의 | 가능성과 시간, 그리고 블랙홀의 열기

마지막 강의 |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2.

그동안 로벨리의 책을 읽어온 독자로서는 이 책은 현대 물리학 이론의 핵심체크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분량은 적고, 주장은 간결하고, 비유는 풍성하다. 물론 비유는 일반독자들이 물리학의 원리를 잘 이해하도록 만들어놓은 장치 같은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뉴튼이 상상한 것처럼 균일한 것이 아니라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이며 휜다고 표현한다든지, 바다가 멀리서 보면 잔잔한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파도가 일렁이듯 나타났다 사라진다로 표현하는 것은 문학적이면서도 비유적이다.

시간은 객관적인 실체 아니라 속도가 빠르면 늦어지고 늦으면 빨라지는 상대적인 존재이며, 우리가 상상하듯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할 때 우리는 당혹하게 된다.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수천 년 동안 지구는 평평하고, 지구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했다가 물리학적, 생물학적 지식에 의해 지구는 둥글고,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며, 인간은 진화한 생물 종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인류학적 당혹감과 같은 것이리라.


3.

로벨리는 정말 간략하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부터, 현대물리학자들이 새로 발견한 양자역학, 거대한 우주로부터 가장 작은 입자까지, 공간도 입자이고, 시간은 열 효과이며 블랙홀은 과학계의 로제타석임을 이야기한다. 생활 세계에서는 전혀 오감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이 물리학적 세계를 우리는 아주 낯선 눈으로 경이에 차서 바라본다. 정말? 세상이, 우주가, 시간과 공간이, 인간이 그렇다고?

마지막으로 로벨리는 인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은 신화적 존재도, 만물의 영장도, 가장 위대한 생명체도, 특별하고 영원한 존재도 아니다. 그저 세상 속에 존재하는 다른 존재와 마찬가지인 존재일 뿐이다. 게다가 이제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존재. 로벨리는 말한다.


내 생각에 우리 종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거북이처럼 자신과 유사한 종을 수천, 수백만 년 동안, 인류 역사의 수백 배에 이르는 시간 동안 존재하게 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수명이 짧은 종에 속합니다. 우리의 사촌뻘 되는 종은 이미 모두 멸종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기까지 하고 있지요. 우리가 변화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결과 기후와 환경은 처참할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구에게는 별일 아닌 작은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우리 인간은 아무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언론과 정치계는 우리 곁을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소들을 무시하고 묻어버리려 합니다. 아마 지구상에서 개인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지각하고 있는 종은 우리 인간뿐일 것입니다. 나는 조만간 우리가 만든 문명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역시 진정으로 멸종에 이르는 모습을 의식적으로 깨달아야 하는 종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134~5쪽)


4.

그럼에도 로벨리는 인간의 특징을 아름답게 이야기하며 책을 마감한다. 그 마지막을 같이 읽어보자.


우리는 항상 사랑을 하는 정직한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는 천성적으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계속 배웁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계속 성장합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우리가 알고자 하는 욕망을 불태웁니다. 지식은 아주 작은 공간의 심오한 구조 속에, 시간의 특성 속에, 블랙홀의 운명 속에, 그리고 우리 생각의 기능 속에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계의 끝부분, 즉 우리가 모르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이곳에서 세상의 신비와 아름다움이 반짝이는 빛을 뿜어 우리는 숨죽이게 합니다.(138쪽)


그래, 그러면 됐다. 주어진 생애를 잘 살면 된다. 우주에, 지구에, 모든 생명에, 만물에 감사한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책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람, 장소, 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