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경 지음 (문학과 지성사, 2015)
사회적인 타자화가 유아화infantilization -- 이 단어를 이런 의미로 쓸 수 있다면 -- 를 동반하는 예는 이 밖에도 많다.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생활보호 대상자도 곧잘 나이를 무시당하고 아이처럼 취급된다.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율성을 박탈당하고 사소한 것까지 잔소리를 들으면서, “나이의 위계에서 돌이킬 수 없이 강등되었다는 공포감”을 경험한다. 아이의 이미지는 여기서 그들의 신체와 정신이 더 쉽게 침범될 수 있음을 표시한다. 그들은 더 작은 명예를 지니며, 더 쉽게 모욕당하고, 그러면서 그 모욕의 무게를 평가절하당한다. 그들은 불완전한 사람, ‘모자라는’ 사람이다. 그들의 그림자는 남들보다 작고 희미하다. (141쪽)
1.
지인들의 입을 통해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를 듣고 있었다. 신선하고, 깊이 있고, 다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읽을 책이 많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책을 주문하고, 받아서 일주일 넘게 야금야금 읽었다. 2015년에 나온 책이 2025년 4월 34쇄를 찍었다. 10년 동안 꾸준히 팔리고 읽혔다는 이야기다. 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환대는 어디까지 가능한 가 등을 차근차근 개념을 검토해 가며 쌓아가는 논리적 과정을 따라가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는 혜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끓는 물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의 상태변화처럼 독자의 생각을 살살 그리고 철저하게 새롭게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책은 논문에 가깝다. 쉽지는 않지만 읽고 나면 내 머리가 든든한 보양식 한 그릇을 먹었다는 뿌듯함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이런 책도 나에게 대접한다.
2.
20세기의 거의 끄트머리에 구치소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기에 했던 청년운동의 역사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망에 걸려 김대중 정권 때 잡혀 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경찰에게 심문을 당하며 내가 했던 첫 번째 질문은 "왜 하필 지금이냐?"였다. 독재 시기에는 잡지 않다가 민주화 정부시대에 들어와 구속한 것이 어처구니없었다. 경찰도 이 질문에 침묵으로 답했다. 자신들도 시키는 일이니 하는 거라고 미안해한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여름에 잡혀 들어가 혼거방에서 지내고, 1심에서 풀려나지 못해 겨울에는 독방에서 지냈다. 여름에는 사람들의 열기에 쪄서 죽겠고, 겨울에는 마루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얼어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거기에서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재판준비도 하고. 풀려나면 쓸 책을 구상하기도 했다. 몸이 갇혀 있었지만 의식은 갇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름 고군분투했던 시기였다.
3.
내란을 저지른 전 대통령이 당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보도를 통해 듣게 된 구치소 상황은 내가 살았을 때보다 훨씬 나아진 듯했다. 게다가 여름에 독방이니 나름 쾌적한 환경이 제공된 것이다. 그런데 이 내란 수괴는 그것이 너무 힘들었나 보다. 당연하지. 두목 노릇을 하다가 아이 취급을 당하니 얼마나 정신적으로 충격을 먹었을까. 이해는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감방에 들어온 순서대로 다시 서열이 정해지고, 자신이 있고 싶은 장소에 있을 수 없게 되고, 자신이 쓰고 싶은 시간을 마음껏 쓰지 못하게 되는 곳이 구치소다. 괜히 괴로워하지 말고 잘 적응해서 몸을 보살피고 정신을 차리기를 바란다. (이런 글을 쓸려고 한 것은 아닌데, 쓰다 보니 이렇게 됐다.)
4.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26쪽) 지은이는 사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분석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확장하여 사람에게 그림자가 필요하듯이, 장소 또한 필요하며, 한 사람에게 곁을 주기 위해서는 그 조건과 관계없이 환대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여러 이론가들의 논의를 비판하고 확장하면서 주장한다.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 (그 감옥이 물리적 공간이든, 심리적 공간이든, 관습적 공간이든 상관없이) 장소를 상실하는 '비장소'의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비장소'에 놓이게 되면 차별이 시작된다. 과거의 차별이 신분의 위계화를 통해 형성이 되었다면, 현재의 차별화는 장소/자리를 둘러싼 투쟁에서 발생한다.
"온전한 인격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상민은 여성, 외국인, 장애인,ㅡ 총체적 시설의 재소자 등등과 비슷하다. 그들은 상호작용의 장안에 양반, 남자, 국민, 정상인, 일반인과 동등한 자격으로 들어가지 못하며, 의례 교환에 있어서 불평등을 경험한다. 이러한 통찰은 신분 차별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는 신분 차별을 장소/자리를 둘러싼 투쟁이라는 더 넓은 틀에서 바라볼 수 있다. 신분이란 어떤 위계화된 구조 안에 있는 고정된 위치들이 아니라 무리짓고, 사회 공간을 점유하고, 경계를 만들며, 배제하거나 포함시키고, 자리를 주거나 뺏는 어떤 운동의 효과이다. 그러므로 신분의 개념은 인정투쟁이나 타자화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141~2쪽)
5.
우리는 태어나 환대를 받으며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장소가 배정된다.) 이는 조건 없이 주어지는 환대이다. 그 환대가 없다면 탄생도, 여행도, 이사도, 구직도, 가족형성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의 삶 자체는 바로 이 환대를 통한 장소/자리의 차지와 관련되어 있다. 이 당연하지만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던 장소의 문제를 성원권, 인정투쟁, 사람의 연기나 수행, 모욕, 우정, 절대적 환대, 신성한 것 등의 개념을 검토하면서 파고들고 확장하는 것이 이 책이다. 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하지만 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겠는가? 영혼을 보살피는 깊이 있는 글은 간혹 어려움과 지루함이라는 포장을 덮고 있다. 그 포장을 살살 뜯어서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 독서행위이다.
5.
글을 쓴 이가 마지막으로 쓴 문단을 소개한다. 아마도 이 긴 논의 끝에 자신이 던지고 싶었던 최후진술 같은 것이니.
"여성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여전히 조건적이다. 여성은 어디서나 모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멋진 옷과 가방도, 자격증도, 명패나 직함도 완전한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여성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이등 시민이다. 흑인 변호사나 흑인 교수 심지어 흑인 대통령의 존재가 전체 흑인의 지위를 판단하는 데 별다른 영향력을 줄 수 없듯이, 몇몇 성공한 여성이 있다고 해서 이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성은 자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환대의 권리 -- 환대받을 권리와 환대할 권리 --는 그러므로 당분간 우리의 어젠다를 구성할 것이다." (2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