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저, (청어람미디어, 2004년 절판)
그가 당대의 모든 지적 권위를 부정한 자유로운 지성이었음을 나는 강조한다. 특히 그는 당시를 지배한 종교적 도그마에 저항하여 관용을 주장한, 사상적 자유의 역사에서 가장 선구적인 투사였음을 주목한다. 르네상스 이후 지금까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했던 인류의 긴 투쟁은 몽테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아직도 온전한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500년 전의 그는 더욱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는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프랑스혁명의 선구자였고, 민중문화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었다. 또한 과학적인 사회학과 심리학의 창립자였고, 서양중심주의에 반대한 최초의 문화상대주의자이자 회의론자였다. 동시에 자유교육을 주장하고 자연의 보호와 회귀를 주장한 생태주의의 아버지였다. 또한 당대의 전쟁과 부정부패에 대한 신랄한 고발자였다.
한마디로 그는 자유로운 르네상스인, 바로 그 전형이었다.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심지어 '자기'라는 권위조차 회의하고 해부하며 고백하는 용기까지 보여주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아는 르네상스의 실상은 바로 그러한 자유정신의 구현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르네상스인, 자유인에 의해 우리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지기를 꿈꾼다. (323~4쪽)
1.
박홍규는 누구인가? 알라딘의 소개글에 따르면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작은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내 친구 예수는 아나키스트』 『간디 평전』 『유일자와 그의 소유』 『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2023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2022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2021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 『비주류의 이의신청』(2021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인문학의 거짓말』 『놈 촘스키』 『아나키즘 이야기』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유한계급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나는 그를 법학교수, 아나키스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가 쓰거나 번역한 많은 책을 읽었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그가 정직하고, 담백하고, 소탈한 사람임을. 나는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이 모든 기억은 모두 그가 쓴 글을 읽거나 그가 나온 매체를 통해서 얻은 것들이다.
2.
이번에 소개한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는 이미 절판된 책이다. 원래 <에세(수상록)>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으나, 도서관에 없는 관계로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에세> 소개서를 대출했다. 박홍규의 문체는 무미건조하고 솔직담백하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맛은 덜하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치밀하고, 섬세한 분석이 돋보여, 문장의 결을 읽으면 이전보다 스마트해지는 기분이 든다. 특급 교양인의 교양서를 읽는 기분이랄까?
처음에 인용한 부분은 책의 말미에 박홍규가 몽테뉴에 대해 정리한 글이다. 인용구만 보더라도 박홍규의 문체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법을 전공해서 그런지 선언적이고 단정적인 문체에 힘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작가의 다른 면을 읽어낼 수 있다. '아나키스트'의 눈에는 '아나키스트적' 면모가 남달리 보이는 지, 그의 손에 들어가면 아나키스트가 되기 십상이다. 그의 손에 의해 예수도, 존 레넌도 아나키스트가 된다. '자유, 자치, 자연'이라는 아나키즘적 구호에 적합한 인물들은 아나키스트가 될 자격이 있다. 그렇다면 노자도, 장자도 아나키즘적 풍모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3.
나는? 예수도, 노자도, 장자도 아나키즘의 자장 안에 있다면, 나 또한 일부분은 아나키스트이리라. 그런 그의 눈에 몽테뉴는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그는 하나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너무도 다양한 색깔과 주장과 삶을 산 르네상스인이다. 나는 몽테뉴의 <에세>로 가는 길을 박홍규의 소개로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꽤나 친절하게 몽테뉴의 다양한 영역을 촘촘히 분석하고 소개한 책이 바로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이다. 두껍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품절이라 중고서점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책, 도서관에 가면 한 두 권은 있을 법한 책이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읽기를 권한다.
<P.S.>
이 책은 박홍규가 법정소송에 휘말려 힘든 시기에 자유롭기 위해 쓴 책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독서나 집필을 통해서 완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책은 진통제 역할도 충분히 해낸다. 나도 여러 차례 임상실험으로 겪어본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