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지음 (2024, 쌤앤파커스)

by 김경윤

의사소통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고,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뭔가 말하기 위해 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죠. 우리는 그들과 대화하고 싶어서, 뭔가 말할 것이 있다는 구실을 대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교리 문제에 대해 질문할 때, 정말로 교리 문제가 목적이었을까요? 오히려 "베아트리체가 사랑의 불꽃 가득한 거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그에 눌린 나의 시력은 힘을 잃고 달아났고, 나는 눈을 숙이고서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던" 순간에 이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간과 시간,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실재와 관계를 맺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실재는 ‘그것’이 아나라 ‘당신’입니다. 서정 시인들이 달에게 말을 걸 때처럼 말입니다. ≪정글북≫에서는 모든 동물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외침을 주고받죠.

“당신과 나,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누었다.”

나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를 항상 ‘당신’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물과 하나임을 인정하는 그런 ‘당신’이죠. 당신과 나,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눈 것입니다.

(...)

수Sioux 족의 한 장로에 따르면 삶의 의미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을 향해 노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화이트홀을 향한 나의 노래입니다. (173~175쪽 중에서)


1.

이제 카를로 로벨리의 저서를 읽는 것은 일종의 리추얼과 같은 것이 되었다. 그의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그의 책을 읽고, 그의 글을 느끼고, 그의 글을 읽은 나의 생각을 쓰는 것도 일종의 의식이 된 것일까? 여름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서점에 들러 <화이트홀>을 구입하여 배낭에 챙겨 넣고 비행기에 오르면서 왜 그리도 가슴이 뿌듯했는지. 비행기에서 자지 않고 로벨리의 책을 읽으면 왜 그리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배낭 속에 책을 넣지 않고 손에 쥐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180쪽밖에 안 되는 책을 야금야금 읽었던 시간이 어찌 그리 귀했는지.


2.

이 책은 인간이 아직은 경험할 수 없는, 그러나 물리학적으로 계산가능한 블랙홀과 화이트홀에 대한 로벨리의 노래와 같은 책이다. 책은 간결하고 아름답고 빛나고 신비하다.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그 반대에 해당하는 화이트홀에 대한 아름다운 과학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멋진 책이다. 어둠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세상에 밝은 빛이 던져지는 순간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도 그러한 소멸과 탄생의 반복 속의 한 모습은 아니었을까?


로벨리는 이제 우주를 하나의 물질로 대하지 않고 '당신'으로 대한다. <정글북>에서 모든 동물들이 너와 나의 관계인 것처럼, 인간은 우주를 '당신'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한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주의 아이니까. 책을 쓰는 것은 어쩌면 그 '당신'에 대한 노래일지도 모른다. (앞에 인용한 구절을 읽어보라.) 그렇게 로벨리는 우주에 빠져 우주와 대화하며 우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본 우주를 친절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로벨리에 이끌려 떠나는 우주여행은 낯설고 신비하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아름다운 동화 같은 마무리이다.


"1933년 5월 15일 저녁,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하늘의 휘파람 소리를 들었지만 수십 년 동안 아무도 그것이 은하수 중앙의 블랙홀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하늘에 있는 이 작은 화이트홀도 이미 오래전에 그 존재를 드러냈는데 우리가 아직 알아차리지는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천문학작들은 중력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한 보이지 않는 먼지가 우주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관찰해 왔습니다. 이를 '암흑 물질'이라고 부르죠.

암흑 물질의 일부는 어쩌면 수십억 개의 작고 섬세한 화이트홀로 이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블랙홀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잠자리들처럼 우주를 가볍게 떠다닐 화이트홀 말입니다." (181쪽)


3.

풍랑주의보로 일주일 동안 배를 뜨지 못했지만, 나는 희한하게도 그 기간 동안 휴가를 얻어 고양에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가파도로 돌아와 정상적인 근무를 시작하며, 틈틈이 이렇게 독후감을 기록한다. 더위를 견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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