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저술의 배경과 마르크스의 삶
1864년 9월 28일 저녁, 런던 세인트 마틴스 홀에는 각국에서 온 노동자 대표들이 모여 있었어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각국의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46살의 마르크스도 독일 노동자 대표로 참석했어요.
이 모임의 목적은 '국제노동자협회'를 창설하는 것이었어요. 나중에 '제1인터내셔널'이라고 불리게 되는 조직이죠. 마르크스에게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공산당 선언』에서 외쳤던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가 드디어 구체적인 형태를 갖게 된 거였어요.
하지만 이 모임이 성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마르크스는 1849년 이후 15년 동안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건강도 좋지 않았어요. 게다가 1848년 혁명의 실패 이후 유럽 전체가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어 있었죠.
마르크스는 이 기간 동안 주로 경제학 연구에 몰두했어요.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정치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어요. 혁명의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186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활발해졌어요. 폴란드에서는 러시아에 맞서 독립 운동이 일어났죠. 다시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거예요.
특히 영국에서 일어난 변화가 중요했어요. 영국의 노동자들이 미국 남북전쟁에서 링컨을 지지하는 운동을 벌인 거예요. 면화 수입이 중단되어 영국 방직업계가 큰 타격을 받았는데도, 노동자들은 노예제 폐지를 지지했어요. 이는 영국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 의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프랑스에서도 변화가 있었어요. 나폴레옹 3세(루이 나폴레옹)가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일부 자유를 허용했거든요. 프랑스 노동자 대표들이 1862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이때 영국과 프랑스 노동자들 사이에 교류가 시작되었어요.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공통의 문제를 논의하게 된 거죠. 특히 폴란드 독립 문제를 계기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어요.
1864년 9월, 런던에서 폴란드 독립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어요. 여기에 각국 노동자 대표들이 참석했는데, 이들은 단순히 폴란드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공통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9월 28일 세인트 마틴스 홀에서 국제노동자협회 창립 대회가 열린 거였어요.
마르크스는 처음에는 이 모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각국 노동자들의 수준이 다르고, 사상적 차이도 클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막상 참석해보니 생각보다 가능성이 있어 보였어요. 특히 영국 노동자들의 실무 능력과 프랑스 노동자들의 혁명 정신이 결합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마르크스는 곧 국제노동자협회의 핵심 인물이 되었어요. 그의 이론적 능력과 경험이 인정받은 거죠. 특히 협회의 창립 선언문과 규약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되었어요. 이는 마르크스에게 자신의 사상을 국제 노동 운동에 반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저술의 핵심 내용 정리
마르크스가 국제노동자협회를 위해 쓴 문서들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창립 선언문, 임시 규약, 그리고 각종 연설문과 결의문들이에요. 이 문서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실제 노동 운동과 어떻게 결합되었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들이에요.
창립 선언문 - "노동자여, 단결하라!"
국제노동자협회 창립 선언문은 마르크스가 쓴 가장 감동적인 문서 중 하나예요. 『공산당 선언』보다 16년 후에 쓰여진 것이지만, 여전히 혁명적 열정이 넘쳐흘러요.
선언문은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1848년 이후 유럽에서는 전례 없는 산업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통계 자료를 들어가며 부의 증가와 빈곤의 심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특히 영국의 사례를 자세히 분석해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런던에서는 매년 4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제시해요.
하지만 선언문은 절망적이지만은 않아요. 노동자들의 투쟁도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적인 면도 강조해요. 특히 영국에서 10시간 노동법이 통과된 것을 큰 성과로 평가해요. "이는 정치경제학의 원리에 대한 노동계급의 첫 번째 승리"라고 선언해요.
협동조합 운동의 발전도 중요하게 다뤄요.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산과 유통을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협동조합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근본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해요.
선언문의 마지막은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해요.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시대에, 노동자들도 국제적으로 단결해야 한다." 그리고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호로 끝나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임시 규약 - 조직의 원칙들
국제노동자협회의 임시 규약은 마르크스가 매우 신중하게 작성한 문서예요. 각국 노동자들의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고려해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으려고 노력했거든요.
규약의 첫 번째 원칙은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사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다른 계급의 도움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해야 한다는 뜻이었죠.
두 번째 원칙은 "경제적 예속이 모든 예속의 근원"이라는 것이었어요. 정치적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경제적 해방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자유가 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세 번째 원칙은 "노동자의 해방은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것이었어요. 한 나라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죠.
규약은 또한 협회의 조직 구조도 명시했어요. 각국에 지부를 두고, 연례 대회를 통해 중요한 사안을 결정한다는 거였어요. 중앙위원회는 런던에 두되, 각국 지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원칙이었죠.
미국 남북전쟁에 대한 연설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를 대표해서 링컨 대통령에게 축하 연설문을 보냈어요. 링컨이 재선되고 노예제 폐지를 추진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죠.
이 연설문에서 마르크스는 미국 남북전쟁을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해석해요. "이는 단순한 지역 갈등이 아니라 자유 노동과 노예 노동 사이의 투쟁"이라고 규정해요. 북부의 승리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승리이기도 하다는 거였죠.
특히 영국 노동자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해요. 면화 수입 중단으로 큰 피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링컨을 지지했다는 거였어요. 이는 국제적 연대 정신의 훌륭한 사례라고 칭찬해요.
폴란드 문제에 대한 결의문
국제노동자협회는 폴란드 독립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요. 마르크스는 여러 결의문을 작성해서 러시아의 폴란드 지배를 비판했어요.
마르크스는 폴란드 문제를 단순한 민족 문제가 아니라 유럽 전체의 민주주의 문제로 봤어요. 러시아 차르정이 유럽 반동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폴란드 독립은 유럽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거였어요.
또한 폴란드 독립은 독일과 러시아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요. 민족 억압이 사라져야 계급 연대도 가능하다는 논리였죠.
파리 코뮌에 대한 연설
1871년 파리 코뮌이 일어났을 때,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를 대표해서 코뮌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어요. 이는 나중에 『프랑스 내전』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죠.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을 "노동자 계급 정부의 첫 번째 시도"라고 평가했어요. 비록 실패했지만, 미래 사회주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 소중한 경험이라는 거였어요.
핵심 개념 정리
국제주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국제적 체제이므로, 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도 국제적이어야 한다고 봤어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 필요였던 거죠.
노동자 계급의 자주성: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사업이어야 한다"는 원칙이에요. 다른 계급의 도움이나 동정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이는 부르주아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을 경계한 것이기도 해요.
경제적 해방의 우선성: 정치적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해방이 가능하다는 개념이에요. 선거권을 얻어도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면 실질적 자유는 없다는 거였죠.
실천적 국제주의: 추상적인 연대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들(미국 남북전쟁, 폴란드 독립 등)을 통해 국제적 연대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해요. 마르크스는 이론적 연대를 넘어서 실질적 지원과 연대 행동을 강조했어요.
조직의 민주성: 국제노동자협회는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라 각국 지부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연방제 조직이었어요.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가진 노동자들이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포용적 구조를 만든 거였어요.
정치 투쟁의 필요성: 협동조합 운동 같은 경제적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근본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인식이에요. 하지만 기존 부르주아 정당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독자적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의 결합: 폴란드 독립 같은 민족 문제도 계급 문제와 분리해서 볼 수 없다는 관점이에요. 민족 억압이 계급 연대를 가로막기 때문에,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였어요.
국제노동자협회는 1864년부터 1876년까지 12년간 활동했어요. 비록 내부 분열로 해체되었지만, 국제 노동 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처음으로 각국 노동자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한 역사적 사건이었거든요.
마르크스는 이 조직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실제 노동 운동과 결합시킬 수 있었어요. 『자본론』 같은 이론서만 쓴 것이 아니라, 실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한 실천가이기도 했던 거죠.
특히 마르크스가 작성한 창립 선언문은 『공산당 선언』과 함께 국제 노동 운동의 고전이 되었어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20세기 내내 전 세계 노동자들의 슬로건이었거든요.
국제노동자협회의 경험은 나중에 제2인터내셔널, 제3인터내셔널로 이어져요. 비록 각각 한계와 문제점이 있었지만, 국제적 노동자 연대라는 이상은 계속 이어져 내려왔어요.
지금도 세계화 시대에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어요. 다국적 기업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시대에, 노동자들도 국제적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해요.
46살의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각국 노동자들과 함께 만든 이 조직이 비록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 정신과 이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외침은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거든요.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 활동을 통해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그는 서재에서만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실제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투쟁을 이끌어간 지도자였던 거죠. 이것이 마르크스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위대한 혁명가로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