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 역사는 반복된다, 비극과 희극으로

by 김경윤

저술의 배경과 마르크스의 삶

1851년 12월 2일, 충격적인 소식이 런던의 마르크스에게 전해졌어요. 프랑스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거였어요.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해산하고 권력을 장악한 거죠. 바로 그 유명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였어요.

33살의 마르크스는 이 소식을 듣고 복잡한 심정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분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로웠거든요. 1848년 혁명 이후 프랑스 정치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였어요.

마르크스는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1849년 『새 라인 신문』이 폐간된 후 독일에서 쫓겨나 파리로 갔다가, 다시 프랑스에서도 추방당해서 런던에 정착한 거였어요. 런던에서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어요.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건강도 좋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매일 경제학 연구를 계속했고, 동시에 유럽의 정치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했어요. 특히 프랑스 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죠.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는 마르크스에게 절호의 분석 기회였어요. 1848년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벌어진 모든 정치적 사건들이 이 쿠데타로 귀결된 거였거든요.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었어요.

마르크스는 쿠데타 직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미국의 독일어 신문 『혁명』에 기고할 목적이었어요. 하지만 쓰다 보니 분량이 계속 늘어났어요. 단순한 시사 평론이 아니라 프랑스 현대사 전체를 분석하는 작업이 되어버린 거죠.

마르크스는 이 작업에 완전히 몰두했어요. 프랑스 신문들을 매일 읽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동기를 분석했어요. 마치 탐정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 같았죠. 아내 예니는 마르크스가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고 했어요.

1852년 봄, 마르크스는 원고를 완성했어요. 제목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었어요. 브뤼메르 18일(11월 9일)은 나폴레옹 1세가 1799년에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었어요. 조카 루이 나폴레옹도 같은 날짜에 쿠데타를 일으킨 거죠. 역사의 아이러니였어요.

이 책은 1852년 5월 뉴욕에서 출간되었어요. 독일어로 쓰여진 120페이지 정도의 책이었죠. 처음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르크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어요.

특히 이 책의 첫 문장은 너무나 유명해요. "헤겔은 어디선가 모든 위대한 세계사적 사실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나폴레옹 1세는 비극적 영웅이었지만, 루이 나폴레옹은 희극적 모방자라는 뜻이었어요.


저술의 핵심 내용 정리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마르크스의 정치 분석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작품이에요. 1848년부터 1851년까지 4년간의 프랑스 정치사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생생하게 분석했거든요.


1848년 2월 혁명의 성격

마르크스는 1848년 2월 혁명을 "부르주아 공화국의 탄생"으로 규정해요.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의 지배가 더욱 공고해진 거라고 분석했어요.

7월 왕정 시대에는 금융 부르주아만 정치권력을 독점했어요. 은행가, 증권업자, 철도왕, 광산왕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하지만 2월 혁명 후에는 산업 부르주아와 상업 부르주아도 권력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지배가 확립된 거죠.

하지만 이 공화국은 태생적 한계가 있었어요. 부르주아들은 공화정이라는 정치 형태는 원하지 않았거든요. 그들이 원한 것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정치 체제였어요. 공화정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죠.


6월 봉기와 계급 대립의 노골화

1848년 6월 23-26일에 일어난 파리 노동자 봉기는 결정적 전환점이었어요. 마르크스는 이를 "현대 사회의 두 계급 간의 첫 번째 위대한 전투"라고 불렀어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가면을 벗고 직접 맞붙은 거였죠.

봉기의 원인은 국립작업장 폐쇄였어요. 2월 혁명 후 실업자들을 위해 만든 제도였는데, 부르주아들이 이를 부담스러워한 거예요.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봉기했지만, 부르주아들은 군대를 동원해서 잔혹하게 진압했어요.

마르크스는 이 사건을 통해 부르주아 공화국의 본질을 폭로했어요. "질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학살한 거였죠. 이후 부르주아들은 "질서당"이라는 이름으로 뭉쳤어요. 자유, 평등, 박애 같은 혁명 이념은 모두 버리고 오직 질서 유지에만 집중한 거였어요.


루이 나폴레옹의 등장

184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 나폴레옹이 압승을 거뒀어요. 전체 투표의 75%를 얻었거든요. 이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한 결과였어요. 루이 나폴레옹은 정치적으로 무명인사였고, 특별한 능력도 없어 보였거든요.

마르크스는 이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했어요. 루이 나폴레옹이 당선된 것은 그의 개인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나폴레옹"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특히 농민들이 그를 지지했는데, 이들은 나폴레옹 1세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루이 나폴레옹 자신은 삼촌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어요. 마르크스는 그를 "평범한 모험가"라고 불렀어요. 위대한 나폴레옹의 이름을 빌려 권력을 잡으려는 기회주의자라는 거였죠.


소농민의 정치적 역할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농민 계급의 정치적 역할을 깊이 분석해요. 당시 프랑스 인구의 대부분은 소농민이었거든요. 이들은 각자 작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마르크스는 소농민들을 "자루에 든 감자"에 비유했어요. 하나하나는 비슷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죠. 농민들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분산되어 있고 조직화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농민들은 자신들을 대표해줄 정치적 대표자를 필요로 했어요. 루이 나폴레옹이 바로 그 역할을 한 거죠. 농민들은 그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어요. 나폴레옹 1세가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준 기억 때문이었죠.


보나파르티즘의 본질

마르크스는 루이 나폴레옹의 정치 체제를 '보나파르티즘'이라고 명명했어요. 이는 매우 독특한 정치 형태였어요. 겉보기에는 모든 계급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체제였거든요.

보나파르티즘의 특징은 강력한 행정부와 약한 입법부예요. 루이 나폴레옹은 국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관료제를 강화했어요. 군대와 경찰력도 대폭 증강했죠. 이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면서 부르주아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한 거예요.

하지만 보나파르티즘은 모순적인 체제였어요. 부르주아의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부르주아의 정치적 권력은 제한했거든요. 부르주아들은 경제적으로는 지배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지배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된 거였어요.


쿠데타의 필연성

마르크스는 1851년 12월 2일 쿠데타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 결과였다고 분석해요. 1848년 이후 프랑스 정치의 모든 모순이 이 쿠데타로 귀결되었다는 거였어요.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은 보호받고 싶어했지만, 정치적 책임은 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특히 6월 봉기 이후 노동자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더욱 강력한 권력을 원하게 되었죠. 루이 나폴레옹은 바로 이런 요구에 부응한 거였어요.

농민들도 기존 정치에 실망하고 있었어요.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세금 부담만 늘어났어요. 그래서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게 되었고, 루이 나폴레옹이 그 역할을 한 거였어요.

역사의 반복과 차이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역사의 반복성과 차이점을 탁월하게 분석해요.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는 분명히 나폴레옹 1세의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를 모방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역사적 조건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결과도 달랐다는 거였어요.

나폴레옹 1세의 쿠데타는 프랑스 대혁명의 혼란을 수습하고 부르주아 사회를 확립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어요. 그는 진정한 역사적 인물이었죠. 하지만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는 이미 확립된 부르주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어요. 창조적이 아니라 모방적이었던 거죠.

마르크스는 이를 "비극과 희극"의 차이로 설명했어요. 나폴레옹 1세는 비극적 영웅이었지만, 루이 나폴레옹은 희극적 모방자였다는 거였어요. 같은 형태의 사건이지만 역사적 의미는 완전히 다른 거죠.


핵심 개념 정리

보나파르티즘: 마르크스가 루이 나폴레옹의 정치 체제를 분석하면서 만든 개념이에요. 겉보기에는 모든 계급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르주아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독재 체제를 의미해요. 강력한 행정부, 약한 입법부, 확대된 관료제와 군대가 특징이에요.

계급 균형: 서로 다른 계급들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 나타나는 정치적 상황이에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팽팽하게 맞설 때, 제3의 세력(이 경우 루이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을 수 있게 된다는 분석이에요.

소농민의 정치적 한계: 마르크스는 소농민들을 "자루에 든 감자"에 비유했어요. 공통의 이해관계는 있지만 조직화되지 못해서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다른 계급의 정치적 대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거였죠.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국가가 지배계급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상대적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개념이에요. 루이 나폴레옹 정권은 부르주아의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부르주아의 직접적 통제를 받지 않았거든요.

역사의 반복성: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유명한 명제예요. 같은 형태의 사건이 반복되지만, 역사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의미와 결과도 다르다는 통찰이에요.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괴리: 정치 세력들이 내세우는 이념과 실제 행동 사이의 차이를 날카롭게 분석했어요. 공화주의자들이 공화정을 파괴하고, 질서당이 무질서를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를 보여줬거든요.

정치적 대표의 문제: 각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적 대표를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역학을 분석했어요.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인물이 특정 계급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이 책은 마르크스의 정치 분석 능력이 절정에 달한 작품이에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통해 계급투쟁론을 생생하게 보여줬거든요. 마치 정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재미와 깊이 있는 분석이 결합된 걸작이에요.

특히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첫 문장은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어요. 역사가 단순히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반복과 변주의 과정이라는 통찰이죠.

이 책은 지금 읽어봐도 여전히 흥미로워요. 정치인들의 심리, 대중의 정치적 행동, 언론의 역할, 선거의 의미 등 현대 정치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분석들이 가득하거든요.

마르크스는 이 책을 통해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뛰어난 정치 분석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복잡한 정치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등장인물들의 동기와 행동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했거든요.

33살의 마르크스가 런던의 작은 방에서 쓴 이 책이 정치학의 고전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구체적인 사건 분석을 통해 보편적인 정치 원리를 발견해낸 뛰어난 작품이거든요.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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