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사회를 그리다
저술의 배경과 마르크스의 삶
1875년 봄, 57살의 마르크스는 독일에서 온 소식에 깊은 우려를 표했어요. 독일의 두 사회주의 정당이 통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거든요. 아이제나흐파(마르크스주의 계열)와 라살레파(라살레주의 계열)가 하나가 되어 독일사회민주당을 만든다는 거였어요.
겉보기에는 좋은 소식이었어요. 독일 노동자들이 분열을 극복하고 단결한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통합 강령의 내용을 보고 경악했어요. 너무 많은 타협이 있었고, 심지어 잘못된 이론들이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마르크스는 즉시 독일의 동지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특히 빌헬름 브라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타 강령을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이 편지가 바로 『고타 강령 비판』이에요. 마르크스가 미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서술한 문서이기도 해요.
당시 마르크스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어요. 간 질환과 기관지염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아내 예니도 암으로 투병 중이었어요. 하지만 독일 사회주의 운동의 미래가 걱정되어 병든 몸을 이끌고 이 비판문을 썼어요.
마르크스가 이렇게 격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라살레주의의 문제점을 이해해야 해요. 페르디난트 라살레는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가였는데, 마르크스와는 다른 노선을 걸었어요. 라살레는 국가의 도움을 받아서 노동자 협동조합을 만들면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봤어요.
마르크스는 이런 생각을 매우 위험하다고 봤어요. 프로이센 같은 반동적 국가가 노동자들을 도와줄 리 없다는 거였죠. 오히려 국가에 의존하면 노동자들의 독립성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어요.
또 다른 문제는 라살레의 '임금 철칙'이었어요. 라살레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항상 최저 생계비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어요. 따라서 임금 인상 투쟁은 무의미하고, 차라리 국가의 도움으로 생산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낫다는 거였어요.
마르크스는 이런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봤어요.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임금을 올릴 수 있고, 노동 조건도 개선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영국에서는 10시간 노동법이 통과되었고, 각종 사회 보장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있었거든요.
고타 강령에는 이런 라살레주의의 잘못된 이론들이 그대로 들어있었어요. 마르크스는 이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어요. 잘못된 이론에 기초한 운동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 비판문을 공개하지 않았어요. 독일 사회주의 운동의 통합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대신 소수의 동지들에게만 보내서 내부적으로 토론하자고 제안했어요.
결국 이 문서는 마르크스가 죽은 후 1891년에야 엥겔스에 의해 공개되었어요. 그때는 독일사회민주당이 이미 유럽 최대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성장한 후였죠. 엥겔스는 이제 마르크스의 비판을 공개해도 당의 통합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거예요.
저술의 핵심 내용 정리
『고타 강령 비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요. 첫 번째 부분에서는 고타 강령의 잘못된 점들을 하나하나 비판해요. 두 번째 부분에서는 마르크스 자신의 사회주의 사회 구상을 제시해요. 특히 두 번째 부분은 마르크스가 미래 사회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서술한 부분이에요.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이다"에 대한 비판
고타 강령은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어요. 마르크스는 이 문장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어요.
"노동은 사용가치의 원천이지만,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자연도 노동만큼이나 사용가치의 원천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반박했어요. 노동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고, 자연의 재료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표현이 자본가들에게 유리하다는 점이었어요. "노동이 모든 부의 원천이라면, 자본가들도 정신노동을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은가?" 마르크스는 이런 식의 애매한 표현을 경계했어요.
"노동의 전 수익"에 대한 비판
고타 강령은 "노동자는 노동의 전 수익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마르크스는 이것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어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사회적 공제는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여러 가지 공제 항목을 제시했어요. 첫째, 생산수단의 교체와 확장을 위한 기금. 둘째, 사고나 자연재해에 대비한 예비 기금. 셋째,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 넷째, 교육, 보건, 행정을 위한 기금.
이런 공제를 하고 나면 개인이 받을 수 있는 몫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노동의 전 수익"이라는 표현은 이런 현실을 무시한 공허한 구호라는 거였어요.
"평등한 권리"와 "공정한 분배"에 대한 비판
고타 강령은 "평등한 권리"와 "공정한 분배"를 주장했어요. 마르크스는 이런 추상적 개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권리는 결코 사회의 경제적 구조와 그에 의해 제약받는 문화적 발전보다 높을 수 없다." 즉, 권리라는 것은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거였어요.
마르크스는 "평등한 권리"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어요. 예를 들어 노동 시간에 따라 분배한다고 해도,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가족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불평등이 생긴다는 거였어요.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우월하므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제공하거나 더 오랫동안 노동할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은 결혼했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으며, 한 사람은 자녀가 많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평등해 보이는 권리도 실질적으로는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마르크스는 이를 "부르주아적 권리"라고 불렀어요.
사회주의 사회의 두 단계
마르크스는 이 문서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두 단계로 구분했어요. 이는 나중에 레닌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명명한 구분의 원형이에요.
제1단계: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노동에 따라"
첫 번째 단계는 자본주의에서 갓 벗어난 사회예요. 아직 자본주의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과도기적 사회죠. 이 단계에서는 노동에 따른 분배가 이루어져요.
"생산자는 사회적 공제를 뺀 후 자신이 사회에 제공한 노동량만큼 다시 돌려받는다." 노동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1시간 일한 사람은 1시간에 해당하는 소비재를 받는 거예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해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더 많이 받고, 가족이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게 받게 되거든요. 마르크스는 이를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지평"이라고 불렀어요.
제2단계: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두 번째 단계는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예요. 이 단계에서는 진정한 평등이 실현돼요.
"사회의 생산력이 전면적으로 발전하고 모든 부의 원천이 충분히 흘러나올 때, 그때서야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지평을 완전히 넘어설 수 있다." 물질적 풍요가 실현되어야 진정한 평등도 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이 단계에서는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라는 원칙이 실현돼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더 많이 기여하지만, 분배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는 거예요.
마르크스는 이 단계에서 비로소 "인간의 전면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봤어요. "노동이 단순히 생활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제1욕구가 될 때"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는 거였어요.
국가의 소멸
마르크스는 이 문서에서 국가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했어요.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의 혁명적 변혁기에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독재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에요. 계급이 사라지면 국가도 자연히 소멸한다는 거였어요. 엥겔스가 나중에 "국가의 사멸"이라고 표현한 개념의 원형이에요.
국제주의 비판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이 국제주의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도 비판했어요. 강령에서는 독일 노동자들만 언급하고, 국제적 연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거든요.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활동은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민족적 활동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민족적 활동이 국제적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마르크스는 국제주의가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핵심이라고 강조했어요.
핵심 개념 정리
사회주의 사회의 두 단계: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나중에 레닌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구분한 이론의 원형이에요. 제1단계에서는 "능력에 따라, 노동에 따라", 제2단계에서는 "능력에 따라, 필요에 따라"라는 원칙이 적용돼요.
부르주아적 권리의 한계: 형식적으로는 평등해 보이는 권리도 실질적으로는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는 개념이에요. 사람마다 능력과 가족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기준을 적용해도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사회적 공제: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개인이 생산한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고, 사회 전체를 위한 공제가 필요하다는 개념이에요. 생산수단 확장, 사회보장, 교육, 행정 등을 위한 기금이 필요하다는 거였죠.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필요한 정치 형태예요. 하지만 이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계급이 사라지면 자연히 소멸한다고 봤어요.
노동의 성격 변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생활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제1욕구"가 된다는 개념이에요.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활동이 된다는 뜻이었어요.
국제주의의 우선성: 노동자 운동에서 국제적 연대가 민족적 활동보다 더 근본적이라는 개념이에요. 자본주의가 국제적 체제이므로, 그에 맞서는 투쟁도 국제적이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과학적 사회주의: 추상적인 구호나 도덕적 호소가 아니라 현실적 조건에 기초한 사회주의를 의미해요. 마르크스는 "평등", "정의" 같은 추상적 개념보다는 구체적인 경제적 관계를 중시했어요.
이 문서는 마르크스가 미래 사회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서술한 텍스트예요. 보통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분석에 집중했는데, 여기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어떤 모습일지 상당히 자세하게 그려냈어요.
특히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라는 공산주의의 분배 원칙은 이 문서에서 처음 명확하게 제시되었어요. 이 원칙은 나중에 모든 공산주의 운동의 이상이 되었죠.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이상 사회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어요. 물질적 조건이 성숙해야 하고,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특히 "노동이 생활의 제1욕구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 것이었어요.
마르크스는 또한 과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바로 넘어갈 수는 없고, 중간에 사회주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는 나중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죠.
57살의 마르크스가 병든 몸으로 쓴 이 비판문이 미래 사회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비록 모든 예측이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제시한 이상과 원칙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어요.
마르크스는 이 문서를 통해 단순한 비판가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건축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그는 기존 사회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했거든요. 이것이 마르크스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로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