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그룬트리세)

- 자본론의 밑그림

by 김경윤

저술의 배경과 마르크스의 삶

1857년 가을, 런던의 마르크스는 이상한 흥분 상태에 있었어요.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공황이 유럽으로 번져오고 있었거든요. 39살의 마르크스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어요.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나고, 혁명의 가능성이 다시 열리는 것 같았거든요.

마르크스는 1849년 이후 8년 동안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1848년 혁명의 실패 이후 유럽 전체가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어 있었죠. 마르크스는 이 기간 동안 주로 경제학 연구에 몰두했어요.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매일 10시간씩 공부하며 자본주의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생활은 매우 어려웠어요.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기고하는 원고료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아이들이 병에 걸려도 의사를 부를 돈이 없을 때가 많았어요. 1855년에는 8살 난 아들 에드가가 죽기도 했어요.

그런데 1857년 경제 공황이 터지자 마르크스는 갑자기 활기를 되찾았어요.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한 거예요.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면 혁명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마르크스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자신의 경제학 이론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르크스는 1857년 10월부터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12시간씩,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원고를 써내려갔어요. 아내 예니는 마르크스가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마치 무언가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고 말이에요.

마르크스 자신도 나중에 이 시기를 회상하며 "나는 광인처럼 밤낮으로 일했다"고 썼어요. 건강이 나빠져서 간 질환과 종기로 고생했지만,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혁명이 곧 올 것 같아서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해서 1857년 10월부터 1858년 5월까지 약 7개월 동안 쓴 원고가 바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에요. 독일어로는 'Grundrisse'라고 하는데, '밑그림' 또는 '개요'라는 뜻이에요. 마르크스는 이를 자신의 경제학 체계의 첫 번째 초안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원고는 매우 특이한 성격을 갖고 있어요. 출간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 자신의 사고 과정을 정리한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문장도 매우 길고 복잡하고, 논리의 비약도 많아요. 마치 마르크스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마르크스는 이 원고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했어요. 복잡한 경제학 이론들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위한 작업이었던 거죠. 그래서 당시에는 출간하지 않았어요. 대신 이 원고를 바탕으로 『정치경제학 비판』(1859)과 『자본론』(1867)을 썼어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1857년 공황은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어요. 자본주의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마르크스는 실망했지만, 덕분에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급하게 혁명 이론을 완성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그룬트리세』는 마르크스가 죽은 후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어요. 1939년에야 모스크바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서구에서는 1950년대에야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마르크스의 사상 발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텍스트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어요.


저술의 핵심 내용 정리

『그룬트리세』는 총 7개의 노트북에 쓰여진 방대한 원고예요. 약 8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인데, 마르크스의 경제학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예요.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살펴볼게요.


화폐에서 자본으로의 전환

마르크스는 『그룬트리세』에서 화폐가 어떻게 자본이 되는지 자세히 분석해요. 이는 나중에 『자본론』 1권의 핵심 내용이 되는 부분이에요.

단순한 상품 교환에서는 C-M-C(상품-화폐-상품)의 순환이 일어나요. 예를 들어 농민이 쌀을 팔아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옷을 사는 거죠. 여기서 목적은 사용가치를 얻는 것이에요.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M-C-M'(화폐-상품-더 많은 화폐)의 순환이 일어나요. 자본가가 돈으로 상품을 사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거죠. 여기서 목적은 가치 증식이에요.

마르크스는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자본주의의 본질은 바로 이 끝없는 가치 증식 욕구에 있다는 거예요. 자본가는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쓰고, 번 돈으로 다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해요.


잉여가치의 생산

그렇다면 어떻게 M-C-M'가 가능할까요? 마르크스는 그 비밀이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에 있다고 봤어요.

노동력은 다른 상품과 달리 사용할 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하루 8시간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을 사면, 노동자는 실제로 8시간 동안 일해서 상품을 만들어내요. 그런데 이 상품의 가치가 노동력의 가격(임금)보다 크다면 잉여가치가 생기는 거예요.

예를 들어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해서 100달러 어치의 상품을 만들었는데, 임금은 60달러만 받는다면 40달러의 잉여가치가 생기는 거죠. 이 잉여가치가 바로 자본가의 이윤의 원천이에요.

마르크스는 이를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로 구분해요. 절대적 잉여가치는 노동 시간을 늘려서 얻는 것이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생산성을 높여서 얻는 것이에요.


기계와 자동화

『그룬트리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기계와 자동화에 대한 분석이에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기계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고 봤어요.

"자본은 가능한 한 인간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려고 한다." 기계가 더 효율적이고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에게 모순을 가져다줘요.

마르크스는 이를 '일반 지성'(General Intellect) 개념으로 설명해요.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기계에 체화되면서, 생산에서 직접적인 인간 노동의 역할이 줄어든다는 거예요. 노동자는 기계를 감시하고 조정하는 역할만 하게 되죠.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기초를 흔들어요. 잉여가치는 인간 노동에서만 나오는데, 인간 노동이 줄어들면 이윤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라고 봤어요.


시간의 문제

마르크스는 『그룬트리세』에서 시간에 대해 깊이 있게 사고해요. 자본주의에서 시간은 돈이에요. "Time is money"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는 거죠.

자본가는 노동 시간을 최대한 늘리고, 생산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고 해요. 24시간 공장을 돌리고, 교통과 통신을 발달시켜서 상품이 더 빨리 이동하도록 만들어요. 모든 것이 속도의 논리에 지배받아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진정한 부는 시간의 절약에 있다고 봤어요. 기계가 발달해서 필요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갖게 되어요. 이 자유 시간이야말로 인간 발전의 진정한 기초라는 거예요.

"진정한 경제는 시간의 절약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어요.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절약된 시간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자본가의 이윤 증대에만 사용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봤어요.


소외와 물신숭배

『그룬트리세』에서 마르크스는 소외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든 상품과 분리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동력 자체도 상품으로 팔아야 해요.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관계가 물건들 사이의 관계로 나타난다는 점이에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상품들 사이의 관계로 은폐되는 거죠. 이를 마르크스는 '물신숭배'라고 불렀어요.

예를 들어 빵의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밀이 비싸졌다"고 말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밀을 생산하는 농민들과 빵을 사는 소비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변한 거예요. 물건이 저절로 비싸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힘의 관계가 바뀐 거죠.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

『그룬트리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해서도 언급해요. 기계가 고도로 발달하면 인간의 직접적인 노동은 거의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생산에서 인간이 주요한 행위자가 되기를 그치고, 생산 과정 옆에 서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인간은 생산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과정을 감독하고 조절하는 역할만 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때가 되면 노동 시간에 기초한 가치 법칙도 무너질 것이라고 봤어요. 상품의 가치가 투입된 노동 시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산력 발전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거였어요.

마르크스는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자유가 실현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필요의 왕국을 넘어서 자유의 왕국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억지로 일할 필요가 없어지면, 진정한 인간적 활동이 가능해진다는 거였어요.


자본의 순환과 재생산

마르크스는 『그룬트리세』에서 자본의 순환 과정도 자세히 분석해요. 자본은 화폐 자본, 생산 자본, 상품 자본의 형태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거예요.

이 순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에요. 자본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이 시간 동안은 이윤을 낼 수 없어요. 그래서 자본가들은 순환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려고 노력해요.

또한 마르크스는 단순재생산과 확대재생산을 구분해요. 단순재생산은 같은 규모로 생산을 반복하는 것이고, 확대재생산은 규모를 늘려가며 생산하는 것이에요.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확대재생산을 추구한다고 봤어요.


공황의 필연성

『그룬트리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공황이 왜 필연적인지 설명해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을 확대하려고 하지만, 대중의 소비 능력은 제한되어 있어요. 이 모순 때문에 주기적으로 과잉생산 공황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또한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이윤율 하락도 공황의 원인이라고 봤어요. 기계가 발달할수록 상대적으로 인간 노동의 비중이 줄어들고, 잉여가치의 원천인 인간 노동이 줄어들면 이윤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핵심 개념 정리

일반 지성(General Intellect):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기계와 생산 시스템에 체화된 상태를 의미해요. 개별 노동자의 기능보다는 사회 전체의 과학기술 수준이 생산력을 결정하게 된다는 개념이에요.

절대적 잉여가치 vs 상대적 잉여가치: 절대적 잉여가치는 노동 시간을 연장해서 얻는 잉여가치이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필요 노동 시간을 단축해서 얻는 잉여가치예요.

자본의 유기적 구성: 불변자본(기계, 원료 등)과 가변자본(노동력)의 비율을 의미해요. 기술이 발달할수록 불변자본의 비중이 높아지고, 이는 이윤율 하락의 원인이 된다고 봤어요.

물신숭배: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물건들 사이의 관계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상품이 마치 저절로 가치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뒤에 사회적 노동 관계가 숨어있다는 거예요.

필요의 왕국 vs 자유의 왕국: 필요의 왕국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영역이고, 자유의 왕국은 진정한 인간적 활동이 가능한 영역이에요.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하면 자유의 왕국이 확대될 것이라고 봤어요.

시간의 절약: 마르크스는 진정한 경제는 시간의 절약이라고 봤어요. 기술 발전을 통해 필요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자유 시간을 늘리는 것이 인간 발전의 기초라는 거였어요.


『그룬트리세』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가장 자유롭게 펼쳐진 텍스트예요.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쓴 것이라 논리의 비약도 있고 문장도 복잡하지만, 그만큼 마르크스의 생생한 사고 과정을 엿볼 수 있어요.

특히 기계와 자동화에 대한 분석은 현재의 AI 시대를 예견한 것 같아서 놀라워요.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내다본 "일반 지성"의 시대가 지금 현실이 되고 있거든요.

또한 시간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고도 매우 현대적이에요. 지금도 우리는 "시간이 돈"인 사회에 살고 있고, 모든 것이 속도의 논리에 지배받고 있어요.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진정한 부는 자유 시간에 있을지도 몰라요.

39살의 마르크스가 런던의 작은 방에서 미친 듯이 써내려간 이 원고가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분석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비록 당시에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적 작업은 후세에 큰 유산을 남겼어요.

『그룬트리세』는 마르크스가 단순한 비판가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줘요. 그가 그린 자동화 사회, 자유 시간의 확대, 물신숭배의 극복 같은 주제들은 지금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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