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정치경제학 비판

- 경제학 연구의 서막

by 김경윤

저술의 배경과 마르크스의 삶

1859년 6월, 베를린의 한 서점에 얇은 책 한 권이 조용히 진열되었어요.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겉보기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어요. 고작 1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내용도 매우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이 책은 마르크스가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본격적인 경제학 저작이었어요.

41살의 마르크스는 이 책을 출간하면서 복잡한 심정이었어요. 사실 이 책은 원래 훨씬 방대한 계획의 일부였거든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분석하는 6권짜리 대작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자본, 토지소유, 임금노동, 국가, 대외무역, 세계시장을 차례로 다룰 계획이었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마르크스는 여전히 런던에서 어려운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건강도 좋지 않았어요. 게다가 1857년 경제 공황이 예상보다 빨리 회복되면서 혁명의 가능성도 멀어져 보였어요.

그래서 마르크스는 계획을 수정했어요. 우선 첫 번째 분책만이라도 내놓자고 생각한 거예요. 그것이 바로 『정치경제학 비판』이었어요. 이 책에서는 상품과 화폐만 다루고, 자본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은 다음 권으로 미뤘어요.

마르크스는 이 책을 쓰면서 매우 신중했어요. 『그룬트리세』에서는 자유롭게 사고를 펼쳤지만, 이번에는 출간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었거든요.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했어요.

특히 마르크스는 이 책의 방법론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헤겔의 변증법을 어떻게 경제학에 적용할 것인가가 핵심 문제였거든요. 마르크스는 "나는 헤겔의 변증법을 거꾸로 세웠다"고 말했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이 이 책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제시되었어요.

하지만 책의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어요. 너무 어려웠거든요. 일반 독자들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워했어요. 마르크스의 친구 라살레조차 "이 책은 너무 추상적이다"라고 비판했어요.

마르크스 자신도 이런 반응을 예상했어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과학적 엄밀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썼어요. 마르크스는 인기보다는 정확성을 택한 거였어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문이에요. 여기서 마르크스는 자신의 지적 발전 과정을 회고하고,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 원리를 간결하게 제시했어요. 이 서문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고전적 요약으로 여겨져요.

마르크스는 서문에서 이렇게 썼어요.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핵심 명제 중 하나예요.


저술의 핵심 내용 정리

『정치경제학 비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요. 서문에서는 마르크스의 방법론과 역사관을 제시하고, 본문에서는 상품과 화폐를 분석해요. 분량은 적지만 내용의 밀도는 매우 높아요.


서문 - 역사적 유물론의 정식화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어떻게 경제학 연구에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해요. 법학을 공부하다가 철학으로, 철학에서 다시 경제학으로 관심이 옮겨간 과정을 서술하죠.

특히 1842-43년 『라인 신문』 편집장으로 일할 때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고 해요. 나무 도둑 처벌법, 모젤 지역 농민들의 궁핍 문제 등을 다루면서 경제적 이해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마르크스는 이런 경험을 통해 "법적 관계나 국가 형태는 그 자체로 이해될 수 없고, 헤겔이 18세기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선례를 따라 '시민사회'라고 부른 물질적 생활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요.

그리고 유명한 역사적 유물론의 정식화가 나와요:

"인간은 자신들의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일정한 관계, 즉 그들의 의지와 무관한 필연적 관계인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 생산관계는 그들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한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이루며, 이것이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가 솟아오르는 현실적 토대이고,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이에 조응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사회 이론의 핵심을 담은 문장이에요. 경제적 토대가 정치, 법률, 문화, 종교 등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거였죠. 하지만 이것이 기계적 결정론은 아니에요. 상부구조도 토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거든요.

마르크스는 또한 사회 변혁의 메커니즘도 설명해요. "물질적 생산력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지금까지의 생산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이 관계들은 생산력 발전의 형식에서 그 족쇄로 변한다. 그때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상품의 이중성 -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본문에서 마르크스는 상품 분석부터 시작해요. 이는 나중에 『자본론』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방법이에요. 가장 단순해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는 거죠.

마르크스는 상품이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고 분석해요. 하나는 사용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교환가치예요.

사용가치는 상품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능력이에요. 빵은 배고픔을 달래주고, 옷은 추위를 막아줘요. 이는 상품의 물질적, 자연적 속성이에요.

하지만 교환가치는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비율이에요. 빵 1개가 우유 2병과 교환된다면, 빵의 교환가치는 우유 2병이에요. 이는 상품의 사회적 속성이에요.

마르크스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요. "서로 다른 상품들이 교환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빵과 우유는 완전히 다른 물건인데, 왜 일정한 비율로 교환될 수 있을까요?


추상적 인간노동과 가치

마르크스의 답은 "노동" 때문이라는 거예요. 모든 상품에는 인간의 노동이 들어가 있고, 이 노동이 상품들을 서로 비교 가능하게 만든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노동은 구체적 노동이 아니라 추상적 노동이에요. 빵을 만드는 노동과 우유를 생산하는 노동은 구체적으로는 완전히 다르지만, 둘 다 "인간의 노동력 지출"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마르크스는 이 추상적 인간노동이 상품의 가치를 만든다고 봤어요.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 빵 1개를 만드는 데 평균 1시간이 걸리고, 우유 1병을 생산하는 데 평균 30분이 걸린다면, 빵 1개는 우유 2병과 교환될 수 있어요. 투입된 노동시간이 같기 때문이죠.


화폐의 발생과 본질

마르크스는 화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분석해요. 처음에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졌지만, 교환이 복잡해지면서 일반적 등가물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A가 빵을 갖고 있고 옷을 원하는데, B는 신발을 갖고 있고 빵을 원한다면 직접 교환이 불가능해요. 이때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일반적 등가물이 있으면 교환이 쉬워져요.

역사적으로는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이 이런 역할을 했어요. 금은 내구성이 있고, 분할이 가능하고, 운반이 편리해서 화폐로 적합했거든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화폐의 본질이 금이나 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해요. 화폐는 사회적 관계의 표현이라는 거예요. 사람들 사이의 교환 관계가 화폐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거죠.


화폐의 기능들

마르크스는 화폐의 여러 기능을 분석해요. 첫째는 가치 척도 기능이에요. 모든 상품의 가치를 화폐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둘째는 유통 수단 기능이에요. 상품들 사이의 교환을 매개해주는 역할이에요. C-M-C(상품-화폐-상품)의 순환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거죠.

셋째는 축장 수단 기능이에요. 부를 저장하는 형태로 사용되는 거예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것이 화폐의 가장 원시적 기능이라고 봤어요.

넷째는 지불 수단 기능이에요. 외상 거래나 세금 납부 등에서 사용되는 거예요. 이는 신용 관계의 발달과 함께 나타나는 기능이에요.


상품 물신숭배의 맹아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상품 물신숭배 개념의 맹아를 제시해요. 비록 『자본론』에서만큼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그 기본 아이디어는 이미 나타나 있어요.

상품들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것을 보면, 마치 상품들이 스스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실제로는 상품 뒤에 숨어있는 사회적 노동 관계가 중요한 거예요.

마르크스는 이를 종교적 환상에 비유해요. "종교적 세계에서 인간 두뇌의 산물이 독립적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 세계에서는 인간 손의 산물이 그렇게 보인다."


핵심 개념 정리

역사적 유물론: 마르크스가 체계화한 역사 이론으로, 물질적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사회의 토대를 이루고, 이것이 정치, 법률, 문화 등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이론이에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로 요약돼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생산력이 발전하면 기존의 생산관계와 충돌하게 되고, 이때 사회혁명이 일어난다는 이론이에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에요.

상품의 이중성: 상품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두 측면을 갖는다는 분석이에요. 사용가치는 자연적 속성이고, 교환가치는 사회적 속성이에요. 이 이중성이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의 출발점이에요.

추상적 인간노동: 구체적인 노동의 특수성을 제거하고 순수한 노동력 지출로만 본 개념이에요. 서로 다른 상품들이 교환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에요.

가치법칙: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법칙이에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법칙 중 하나예요.

화폐의 본질: 화폐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표현이라는 개념이에요. 사람들 사이의 교환 관계가 화폐라는 형태로 물화되어 나타난다는 거예요.


이 책은 비록 얇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 개념들이 모두 들어있어요. 특히 서문의 역사적 유물론 정식화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고전적 요약으로 여겨져요.

하지만 이 책의 한계도 분명해요.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워서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 힘들었어요. 마르크스 자신도 이를 인식하고, 나중에 『자본론』에서는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들을 많이 사용했어요.

또한 이 책에서는 자본에 대한 분석이 없어요. 상품과 화폐까지만 다루고 끝나거든요. 정작 자본주의의 핵심인 자본에 대한 분석은 『자본론』을 기다려야 했어요.

그럼에도 이 책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여기서 제시된 방법론과 기본 개념들이 나중에 『자본론』에서 완전히 꽃피우게 되거든요.

41살의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내놓은 이 작은 책이 경제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비록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텍스트로 인정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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