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잉여가치학설사

- 경제학자들과의 대화

by 김경윤

저술의 배경과 마르크스의 삶

1861년부터 1863년까지, 마르크스는 특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어요. 『자본론』을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아담 스미스부터 당대의 경제학자들까지 모든 경제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비판하는 작업이었거든요. 이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잉여가치학설사』예요.

43살의 마르크스는 이 시기에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하루 10시간씩 경제학 문헌들을 읽어가며 방대한 노트를 작성했어요. 총 23권의 노트북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이었죠.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론』의 "역사적 부록"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작업은 단순한 문헌 정리가 아니었어요. 마르크스는 각 경제학자의 이론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들의 한계와 공헌을 명확히 구분했어요. 특히 '잉여가치'라는 자신의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경제학사 전체를 재구성한 거였어요.

마르크스가 이런 작업을 한 이유는 명확했어요. 자신의 이론이 기존 경제학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극복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또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자본주의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는지 폭로하려고 했어요.

이 작업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흥미로운 발견을 했어요. 경제학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죠. 자본주의가 성숙할수록 경제학도 더 정교해졌지만, 동시에 더 변명적이고 변호론적이 되었다는 거였어요.

마르크스는 경제학을 크게 두 시기로 나누었어요. '고전파 정치경제학' 시대와 '속류 경제학' 시대였죠. 고전파는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로 대표되는데, 이들은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속류 경제학은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미화하는 데만 급급했다고 비판했어요.

이 원고는 마르크스가 살아있을 때는 출간되지 않았어요. 『자본론』 4권으로 계획되었지만, 마르크스는 1권 출간 후 2권과 3권 완성에 집중했거든요. 결국 이 원고는 20세기에 들어서야 『잉여가치학설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어요.


저술의 핵심 내용 정리

『잉여가치학설사』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1권에서는 중상주의부터 아담 스미스까지, 2권에서는 데이비드 리카도와 그 후계자들을, 3권에서는 속류 경제학과 사회주의 경제학을 다뤄요.


제1권: 잉여가치 이론의 맹아

마르크스는 경제학사를 잉여가치 개념의 발전사로 재구성했어요. 물론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잉여가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이윤의 원천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거였어요.


중상주의자들

마르크스는 중상주의자들을 경제학의 출발점으로 봤어요. 이들은 부의 원천을 유통 영역에서 찾았어요. 상품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이윤의 원천이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것이 착각이라고 지적했어요. 유통에서는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지 않고, 기존 가치가 이전될 뿐이라는 거였어요. 한 사람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일 뿐이라는 거죠.

중농주의자들

프랑스의 중농주의자들, 특히 케네는 한 걸음 더 나아갔어요. 이들은 부의 원천을 생산 영역에서 찾았거든요. 특히 농업만이 진정한 잉여를 생산할 수 있다고 봤어요.

마르크스는 중농주의자들이 생산에 주목한 것은 옳지만, 농업만을 생산적이라고 본 것은 잘못이라고 평가했어요. 공업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거였죠.


아담 스미스

마르크스는 아담 스미스를 "정치경제학의 아버지"라고 인정했어요. 스미스는 노동을 모든 가치의 원천으로 봤고, 이윤과 지대를 노동자가 창조한 가치에서 공제되는 것으로 이해했거든요.

하지만 스미스에게는 중요한 모순이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노동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 이윤, 지대가 각각 독립적으로 가치를 형성한다고 주장한 거였어요.

마르크스는 이를 "스미스의 이중성"이라고 불렀어요. 과학적 통찰과 속류적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었죠.


제2권: 리카도와 고전파의 완성


데이비드 리카도

마르크스는 리카도를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완성자로 평가했어요. 리카도는 스미스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노동가치론을 일관되게 적용하려고 했거든요.

리카도는 상품의 가치가 투입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칙을 확고히 했어요. 또한 이윤과 임금이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것도 명확히 했죠. 임금이 오르면 이윤이 떨어지고, 임금이 떨어지면 이윤이 오른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리카도도 한계가 있었어요. 노동력 자체가 상품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하지 못했고, 잉여가치의 원천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어요.

마르크스는 이를 "리카도의 난점"이라고 불렀어요. 노동가치론을 일관되게 적용하면서도 이윤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딜레마였던 거죠.


리카도 학파의 분해

리카도 사후 그의 제자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어요. 한쪽은 리카도의 이론을 더 급진적으로 발전시켜서 사회주의적 결론에 도달했고, 다른 한쪽은 리카도의 이론을 포기하고 속류 경제학으로 후퇴했어요.

마르크스는 전자를 "리카도 학파의 혁명적 결론"이라고 불렀어요. 토마스 호지스킨, 윌리엄 톰슨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해요. 이들은 노동가치론을 철저히 적용해서 자본가의 이윤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어요.

후자는 "리카도 학파의 해체"를 대표해요. 제임스 밀, 맥컬록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죠. 이들은 리카도 이론의 급진적 함의를 피하기 위해 이론 자체를 왜곡하기 시작했어요.


제3권: 속류 경제학의 등장


속류 경제학의 특징

마르크스는 1830년대 이후의 경제학을 '속류 경제학'이라고 불렀어요. 이들의 특징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은폐하고 현상만을 기술하는 것이었어요.

속류 경제학자들은 더 이상 가치의 원천을 묻지 않았어요. 대신 수요와 공급, 효용과 한계효용 같은 개념으로 가격 형성을 설명하려고 했죠. 이는 노동가치론을 포기하는 것이었어요.

마르크스는 이런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고 봤어요. 1830년대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노동자 운동이 본격화된 시기였거든요. 부르주아지는 더 이상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


장 바티스트 세이

마르크스는 세이를 속류 경제학의 대표자로 봤어요. 세이는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는 유명한 법칙을 제시했는데, 이는 과잉생산 공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어요.

마르크스는 이것이 완전한 착각이라고 비판했어요. 자본주의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토마스 맬서스

맬서스는 리카도의 라이벌이었어요. 그는 지주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공격했어요. 대신 '생산비설'을 주장했는데, 상품의 가치가 생산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었어요.

마르크스는 맬서스를 "의식적인 표절자"라고 혹독하게 비판했어요. 다른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짜깁기해서 지주 계급에게 유리한 결론을 도출했다는 거였어요.


사회주의 경제학자들

마르크스는 로버트 오언, 피에르 프루동 같은 사회주의 경제학자들도 다뤘어요. 이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했지만, 그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어요.

특히 프루동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프루동은 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했는데, 이는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반동적 시도라고 봤어요.


마르크스의 경제학사 인식

마르크스는 경제학의 발전을 자본주의의 발전과 연결해서 이해했어요.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부르주아지도 과학적 분석에 관심을 가졌지만, 계급투쟁이 격화되면서 변호론적 성격이 강해졌다는 거였어요.

또한 마르크스는 각 경제학자의 계급적 배경을 중시했어요. 아담 스미스는 상승하는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했고, 리카도는 산업자본가의 관점을 반영했으며, 맬서스는 지주 계급을 옹호했다고 분석했어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단순히 계급적 편견만으로 경제학자들을 평가하지는 않았어요. 그들의 과학적 공헌도 인정했거든요. 특히 스미스와 리카도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어요.


핵심 개념 정리

고전파 정치경제학 vs 속류 경제학: 고전파는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로 대표되는 시기로,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했어요. 속류 경제학은 1830년대 이후의 경제학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미화하는 데 급급했다고 마르크스는 비판했어요.

노동가치론의 발전: 스미스가 노동을 가치의 원천으로 제시했고, 리카도가 이를 체계화했지만, 둘 다 노동력과 노동을 구분하지 못해서 잉여가치의 원천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어요.

리카도의 난점: 노동가치론을 일관되게 적용하면서도 이윤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딜레마를 의미해요. 마르크스는 노동력이 상품이라는 발견을 통해 이 난점을 해결했다고 봤어요.

리카도 학파의 분해: 리카도 사후 제자들이 두 갈래로 나뉜 현상이에요. 한쪽은 사회주의적 결론에 도달했고, 다른 쪽은 속류 경제학으로 후퇴했어요.

스미스의 이중성: 아담 스미스가 과학적 통찰과 속류적 견해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는 마르크스의 평가예요. 노동가치론과 삼요소설(노동, 자본, 토지)을 동시에 주장한 모순을 지적한 거예요.

경제학의 계급적 성격: 각 경제학자의 이론이 특정 계급의 이익을 반영한다는 마르크스의 관점이에요.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과학적 공헌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잉여가치 개념의 우월성: 마르크스는 자신의 잉여가치 개념이 기존의 이윤, 지대, 이자 개념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어요. 착취의 본질을 더 명확히 드러낸다는 거였죠.


『잉여가치학설사』는 마르크스의 박학다식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작이에요. 경제학사의 모든 주요 인물들을 다루면서도, 각각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했거든요.

특히 이 책은 마르크스가 단순한 비판자가 아니라 건설적인 계승자였다는 것을 보여줘요. 기존 경제학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거죠.

마르크스의 경제학사 서술은 지금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경제사상사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접근법은 마르크스가 개척한 것이거든요.

또한 이 책은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적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해요. 그가 어떤 경제학자들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무엇을 비판했는지 알 수 있거든요.

43살의 마르크스가 대영박물관에서 수많은 경제학 문헌들과 씨름하며 완성한 이 작업이 경제사상사 연구의 고전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단순한 문헌 정리를 넘어서 경제학사 전체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구성한 독창적인 작업이었거든요.

마르크스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경제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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