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요즘 온라인 세상에는 ‘리스크 없는 투자’처럼 ‘상처 없는 사랑’을 약속하는 목소리가 넘쳐납니다. 데이팅 앱은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나와 가장 갈등 확률이 낮은 상대를 추천해주고, 연애 컨설턴트들은 “이런 유형의 사람은 무조건 피하라”는 식의 족집게 과외를 제공합니다. 마치 상해 보험에 가입하듯,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최소한의 위험 부담으로 사랑을 시작하려는 것이죠.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그의 저서 『사랑 예찬(Éloge de l'amour)』에서 바로 이러한 ‘제로 리스크’ 사랑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그는 이런 사랑을 ‘미리 계산된 결합’일 뿐, 진정한 사랑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단언합니다.
“오늘날 사랑에 대한 위협은 자유로운 성생활이나 쾌락주의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 진정한 위협은 안전에 대한 집착입니다. ‘상처받지 않는 사랑’, 즉 미리 위험을 제거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죠. (…) 저는 이것이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중에서
바디우에게 사랑은 안전한 항구에 정박하는 보험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바다로 떠나는 ‘모험’이자, 나의 기존 세계를 통째로 뒤흔드는 혁명적인 ‘사건(Event)’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디우와 함께, 권태와 익숙함이라는 잔잔한 바다 밑에 숨어있는 모험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는 법을 배워보려 합니다.
바디우의 사랑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사건’과 ‘진리’입니다. 그의 이론은 세 단계의 과정을 통해 전개됩니다.
[1단계] 우연한 만남, ‘사건(Event)’의 출현
사랑은 언제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길을 걷다 부딪히거나,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만나거나,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마주치는 등, 어떤 계획이나 예측도 불가능한 방식으로 ‘그 사람’이 내 삶에 출현합니다.
바디우에게 이 만남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기존 세계관을 완전히 뒤흔들고, 세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게 만드는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이전까지 오직 ‘하나(나)’의 관점, 즉 나의 이기적인 욕망과 경험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내가, 이제 ‘둘(우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근본적인 전환점이죠. “너를 만나고 내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어”라는 사랑의 고백이 바로 이 ‘사건’의 체험을 가장 잘 요약하는 말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나’에서 ‘우리’로 이동하는 이 경이로운 경험이 바로 사랑의 ‘사건’입니다.
[2단계] “사랑해”, 위대한 ‘선언(Declaration)’
이 우연한 ‘사건’에 필연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지속시키려는 의지적인 행위가 바로 “사랑해”라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단순히 ‘네가 좋아’라는 감정 표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는 이 우연한 만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부터 당신과 함께 ‘둘의 관점’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겠다”는 미래를 향한 약속이자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출사표입니다. 이 선언을 통해 우연은 필연이 되고, 예측 불가능한 모험이 공식적으로 시작됩니다.
[3단계] 권태를 이기는 힘, ‘충실성(Fidelity) 있는 진리 절차’
이것이 바디우 철학의 핵심이자, 우리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부분입니다. 사랑은 ‘사건’과 ‘선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진짜 사랑은 그 선언에 ‘충실’하며 ‘둘의 세계’를 끊임없이 함께 ‘구축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바디우는 이 끈질기고 지속적인 과정을 ‘진리 절차(Truth Procedure)’라고 부릅니다.
“사랑은 단지 두 사람의 만남이나 그들의 내밀한 관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의 구성(construction)입니다. 즉, 지속되는 삶입니다. (…) 저는 사랑을 ‘둘의 장면(a scene of two)’에서 시작하여 세계를 경험하는 과정, 즉 ‘진리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 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중에서
여기서 ‘진리’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나)’의 이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둘’의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관점, 새로운 세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나’ 혼자만의 진리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의 진리는, ‘나는 바다를 보고 싶고 너는 산을 보고 싶다’는 이 차이를 가지고 씨름하며, ‘바다와 산을 모두 볼 수 있는 새로운 여행지를 함께 찾아내거나’, ‘이번엔 바다를 가고 다음엔 산을 가자고 약속하는’ 그 과정 속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권태는 왜 찾아올까요? 바로 이 ‘진리 절차’를 멈추고 다시 각자 ‘하나(나)’의 세계로 돌아가 버릴 때 권태가 시작됩니다. “네 생각은 그렇구나, 내 생각은 이래”라며 각자의 세계에 갇히거나,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라며 소통을 멈추고 새로운 의미 창조를 포기하는 순간, 사랑이라는 모험은 멈추고 지루한 동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디우에게 진정한 ‘충실성(Fidelity)’이란, 단순히 바람을 피우지 않는 소극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최초의 ‘사건’이 가졌던 혁명적인 힘을 현재로 계속해서 소환하고 이어나가는, 매우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권태와 익숙함이라는 어려움 앞에서, 처음 만남의 그 경이로운 ‘사건’을 다시 기억해내고, ‘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새로운 방법을 함께 ‘발명’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충실성의 본질입니다.
바디우는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말을 인용하며 “사랑은 재발명되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사랑의 ‘지속’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 순간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와 도전에 맞서, ‘둘의 진리’를 새롭게 창조하고 선언하는 끊임없는 재발명의 과정입니다.
함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주말 계획을 세우고, 갑자기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지 머리를 맞대고, 힘든 일을 겪은 서로를 어떻게 위로할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이 모든 일상의 순간들이 바로 ‘둘의 세계’를 재발명하는 위대한 실천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바디우의 철학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안락함에 안주하는 ‘보험’입니까, 아니면 예측 불가능성을 끌어안는 ‘모험’입니까? 권태와 익숙함은 사랑의 끝을 알리는 적신호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재발명’하라는 창조의 초대장입니다.
첫 만남의 그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충실성’을 바탕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둘만의 진리’를 새롭게 구축해나가십시오. 그것이 바로 권태를 이기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