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 <사랑 예찬>
질문 1: 연애 초반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렜는데, 3년쯤 지나니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편안하기만 해요. 데이트 코스도 비슷하고, 대화 주제도 뻔하고... 이게 안정감인지 권태기인지 헷갈려요. 사랑이 식은 걸까요?
답변: 안정감과 권태기는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바로 알랭 바디우가 말한 '진리 절차(Truth Procedure)'를 계속 수행하고 있는가 입니다. 즉, '둘의 관점'에서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노력을 멈추고 각자 '하나'의 관점으로 돌아가 편안함에 안주하고 있는가 입니다.
바디우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이 식었다'는 것은 감정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만남이라는 위대한 '사건(Event)'의 힘을 이어가려는 '충실성(Fidelity)'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설렘이 사라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함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려는 '모험'을 멈춘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상담 Tip: 거창한 이벤트를 계획하기보다, '일상의 재발명'을 시도해보세요. 예를 들어, 매일 가던 식당 대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의 식당에 들어가 보세요. 주말에 영화 보고 카페 가는 대신, 함께 도예를 배우거나, 가구 DIY 클래스를 신청해보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둘의 관점'에서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경험에 함께 뛰어들어 보려는 '태도'입니다. 이 작은 모험들이 반복될 때, 당신의 관계는 익숙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것입니다.
질문 2: 바디우가 말한 '사건으로서의 만남'이라는 말이 참 멋있게 들려요. 그런데 저는 제 연인과의 만남이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았어요. 그냥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다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거든요. 저희 사랑은 '사건'이 없었던 걸까요?
답변: 훌륭한 질문입니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은 반드시 천둥 번개가 치는 것처럼 극적인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만남의 '방식'이 아니라, 그 만남이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바꾸었는가 입니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더라도, 어느 날 "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이제부터 이 사람과 함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깨닫고 결심한 바로 그 '순간'이 당신에게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당신의 세계는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라는 새로운 관점이 추가된 세계로 재편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풍경이 갑자기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그 내면의 혁명, 그것이 바로 바디우가 말한 '사건'의 본질입니다.
상담 Tip: 연인과 함께 두 분의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다르게 느끼기 시작했을까?", "너를 만나고 나서 나의 어떤 점이 가장 많이 변한 것 같아?" 이런 대화를 통해 두 분의 만남이 가졌던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되새길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시작점을 함께 기억하는 것은, 권태라는 안개가 길을 가릴 때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든든한 등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질문 3: 저는 안정적인 연애를 추구해요. 갈등이나 위험 요소를 최대한 피하고 싶고요. 그런데 바디우는 사랑이 '모험'이라고 하니, 제 사랑은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불안해요. 꼭 그렇게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진짜 사랑인가요?
답변: 바디우는 현대인들이 사랑을 '리스크 없는 보험'처럼 다루려는 경향을 비판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리스크'나 '모험'은 일부러 갈등을 만들거나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이며, 우리의 미래는 결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안전한 사랑'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을 차단하고 모든 것을 나의 통제하에 두려는 욕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변수를 통제한 사랑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기계에 불과합니다. 바디우에게 진짜 사랑의 기쁨은, 예측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둘의 힘'으로 함께 극복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함께 창조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상담 Tip: '안정'과 '안주'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의 안정감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도를 막는 '안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두 분의 관계에 작은 '변수'를 허용해보세요. 예를 들어, 여행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짜지 않고, 현지에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보는 겁니다. 처음에는 불안할 수 있지만, 함께 길을 잃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그 과정을 통해 두 분은 '계획된 안정감'을 넘어선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더 깊은 차원의 '신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질문 4: 연인과 미래에 대한 가치관이 너무 달라요. 저는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상대는 결혼 제도 자체에 회의적이에요. 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헤어져야 할까요? 바디우의 철학이 도움이 될까요?
답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 이것은 '하나의 관점'과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이 충돌하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바디우라면 이 상황에서 '둘의 관점'에서 새로운 '진리'를 창조할 수 있는지를 물을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결혼한다' 혹은 '결혼하지 않는다'는 둘 중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이라는 기존의 제도(하나의 관점)와 비혼이라는 또 다른 관점을 모두 넘어서서, 오직 '우리 두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명'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법적 혼인신고는 하지 않지만 결혼식처럼 둘의 사랑을 공표하는 의식을 치르고 평생의 파트너로 살아가는 방식, 혹은 전통적인 결혼의 형태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책임과 약속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결합을 만들어내는 것 등이 될 수 있겠죠.
상담 Tip: "결혼 할래, 말래?"라는 이분법적인 질문에서 벗어나, 각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눠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법적인 안정성'인지, '정서적 소속감'인지, '사회적 인정'인지. 상대가 회의적인 이유가 '자유의 구속'에 대한 두려움인지, '가부장제'에 대한 반감인지. 각자의 욕망의 근원을 깊이 이해하고 나면, 기존의 제도를 넘어서는 '우리만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이고 어려운 '사랑의 재발명' 과정일 것입니다.
질문 5: 바디우가 말한 '충실성'이라는 개념이, 기존에 제가 알던 것과 달라서 흥미로웠어요. 단순히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을 넘어, '사건의 힘을 이어가는 노력'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답변: 네, '충실성'에 대한 바디우의 재해석은 그의 사랑 철학의 핵심입니다.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충실성입니다. 반면 바디우의 충실성은 매우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입니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어떤 문제나 선택의 순간에 "나 혼자라면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우리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제가 이직 문제로 고민될 때, 혼자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연인에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이 더 좋을까?"라고 함께 논의하는 것.
주말에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지만, 연인이 피곤해 보일 때 "우리에게 지금 더 필요한 휴식은 뭘까?"라고 함께 고민하는 것.
사소한 다툼이 생겼을 때, "네가 틀렸어!"라고 말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우리'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