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사랑에 빠진 우리는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영원히 사랑할게.” 그 순간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심입니다. 세상이 끝난다 해도 이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 같은 확신에 가득 차 있죠. 하지만 시간은 무심하고, 감정은 변덕스럽습니다. 뜨거웠던 열정은 어느새 미지근한 익숙함으로 변하고, 어제는 사랑스러워 보였던 모습이 오늘은 견딜 수 없는 단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변덕스러운 감정을 기반으로 한 ‘영원’이라는 약속은 애초에 불가능한 거짓말일까요?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변하는 감정의 파도를 넘어 그 약속을 지켜내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이 질문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뇌했습니다. 그는 약혼녀 레기네 올센과의 파혼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을 평생에 걸쳐 철학적으로 성찰하며, 사랑의 본질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실존하는 방식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이는 사랑이 어떻게 성숙해가는지를 이해하는 데 아주 훌륭한 지도가 되어줍니다. 그의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Enten-Eller)』를 길잡이 삼아, 순간의 감정을 넘어 영원을 약속하는 사랑의 길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키르케고르가 제시하는 첫 번째 삶의 단계는 ‘미적 단계’입니다. 여기서 ‘미학’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뜻을 넘어, ‘감각적 쾌락과 즉각적인 만족’을 좇는 삶의 태도 전체를 의미합니다. 미적 인간에게 삶의 최고 가치는 ‘즐거움’입니다.
미적 사랑의 주인공은 “내 마음이 설레는가?”, “이 관계가 지금 나를 즐겁게 하는가?”를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미래의 책임이나 과거의 약속보다는 현재의 쾌락과 흥미에만 집중하죠. 그래서 이들은 관계가 지루해지거나 어려움에 부딪히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권태라는 적이 나타나면, 새로운 자극과 쾌락을 찾아 쉽게 다른 대상으로 옮겨갑니다. 수많은 여성을 유혹하며 순간의 쾌락만을 좇는 돈 후안(Don Juan)이 바로 이 미적 인간의 상징입니다.
“나의 슬픔은 나의 성(城)이다. (…) 다른 사람이 여기에 들어오는 것을 나는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 나는 사랑하는 것을 그만둔다. 나의 사랑은 이제 과거의 것이 되고, 나는 그것을 기억 속에 간직함으로써 즐거움을 맛본다.”
- 쇠렌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유혹자의 일기’ 중에서
미적 사랑은 자유롭고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그 종착역은 필연적으로 ‘절망(Despair)’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쾌락은 일시적이며, 감정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반복되고 권태와 공허함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미적 인간은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기에, 결국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미적 단계의 절망을 통과한 사람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계속해서 쾌락을 좇으며 절망의 굴레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결단(Decision)’할 것인가. 이 결단을 통해 비로소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 단계’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 인간은 더 이상 감정에 휩쓸려 표류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끝까지 ‘책임(Responsibility)’을 지는 주체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키르케고르에게 이 윤리적 삶의 정수는 바로 ‘결혼’이라는 결단 속에 있습니다.
“결혼의 윤리적인 점은 내적인 것, 즉 관계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 즉 결단과 의무라는 위험 속에 있다. (…) 사랑은 결혼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역사를 갖는다. 미적인 사랑은 역사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순간 속에만 있기 때문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결혼의 미적 타당성’ 중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2권의 화자인 ‘빌헬름 판사’는 미적 인간 ‘A’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결혼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완성이라고 역설합니다. 키르케고르에게 결혼은 단순히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감정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람을 계속 사랑하기로 선택하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이자 세상 앞에서의 공적인 약속입니다.
윤리적 사랑은 순간의 불꽃같은 열정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성’ 속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감정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헌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윤리적 사랑의 본질입니다. 사랑은 더 이상 변덕스러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한 ‘의무’와 ‘책임’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의무’는 우리를 억압하는 족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혹시 변심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단단한 토대가 됩니다. 이 약속이라는 토대 위에서, 두 사람은 비로소 함께 울고 웃었던 ‘우리’라는 공동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고, 사랑은 더욱 깊고 풍요로워집니다. 미적인 사랑이 점(點)이라면, 윤리적인 사랑은 그 점들을 이어 하나의 선(線), 즉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순간의 감각적 쾌락에 머무는 ‘미적 단계’에 있습니까, 아니면 의지적인 선택과 책임을 통해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윤리적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영원히 사랑할게”라는 약속은, “미래의 내 감정을 100% 확신해”라는 오만한 예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앞으로 어떤 감정의 변화와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로 지금 이 순간 결단하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숭고한 선서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