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앙리 베르그송 : 굳어버린 세계에 생명의 숨결을
1. 파리의 한 강의실, 마법사와도 같았던 강의
선생님, 안녕하세요! 20세기 초, 선생님께서 이곳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하실 때면 파리의 모든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백화점이 선생님의 강의 시간에는 세일을 중단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고요. 선생님의 철학은 대체 어떤 매력이 있었기에, 당시 사람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허허, 어서 오시오. 그 시절 이야기는 조금 과장된 면이 있지.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던 것은 사실이오. 아마도 사람들이 내가 하던 이야기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소.
내가 살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유럽은, 그야말로 ‘과학의 시대’였소. 모든 것을 수학 공식으로 계산하고, 물질로 환원하고, 인과 법칙에 따라 분석하는 것이 최고의 지성으로 여겨졌지. 인간의 마음마저도 뇌의 작용으로, 생명 현상마저도 물리-화학적 반응으로 설명하려 했소. 세상은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처럼 여겨졌고, 시간은 시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똑같은 간격으로 쪼갤 수 있는 ‘공간’의 한 종류로 취급되었지.
지금 저희 시대와도 무척 비슷한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려는 시대니까요.
바로 그거요! 사람들은 그 차갑고 딱딱한 세계관에 숨이 막혔던 게요. 과학이 세상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았지만, 정작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그 설명에서 빠져 있었소.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 사랑의 기쁨, 창조의 환희, 그리고 무엇보다도 되돌릴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진짜 모습 같은 것들 말이오.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소. “여러분, 과학과 지성이 보여주는 세계는 진짜 세계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 박제해놓은 표본실과도 같습니다. 진짜 세계는 그렇게 멈춰 있는 기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가는 거대한 생명의 강물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나의 이런 목소리에서, 잊고 있던 생명의 온기와 자유의 숨결을 다시 느꼈기에 그토록 뜨겁게 호응해 주었던 것이 아닐까 싶소.
‘생명의 강물’이라는 표현이 정말 아름답네요. 선생님께서는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셨지만, 가톨릭 신앙에 깊은 매력을 느끼셨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개종까지 생각하셨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유대인을 박해하는 것을 보고는 “박해받는 이들과 함께 남겠다”며 끝까지 유대인으로 남으셨다는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삶의 태도가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내 삶은 늘 경계 위에서의 삶이었소. 나는 영국인 아버지와 폴란드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자랐지. 내 안에는 여러 문화의 피가 섞여 있었소. 철학적으로도 나는 늘 이성과 감성, 과학과 신비주의, 물질과 정신의 경계에 서서 양쪽 모두를 끌어안으려 노력했소.
나치즘의 광기는 내게 인간의 ‘지성’이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소. 그들은 ‘인종’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는 인간들을 분류하고, 측정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었지. 그것은 생명을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만 보는, 지성의 가장 폭력적인 모습이었소.
나는 박해받는 유대인들과 함께 남음으로써, 바로 그 폭력적인 지성에 맞서고 싶었소. 인간은 결코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생명이며, 우리의 삶은 결코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내 삶 자체로 증명하고 싶었지. 철학은 책상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실존적인 결단 속에서 비로소 살아 숨 쉬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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