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마르틴 하이데거
- "죽음을 향해 달려갈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이 열린다"
1. 독일 검은 숲의 오두막, 고독한 사상가와의 대화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 깊은 검은 숲(Schwarzwald) 속에 있는 선생님의 오두막을 찾아오느라 조금 헤맸습니다. 전기나 수도도 없이, 오직 사유와 집필에만 전념하기 위해 이런 외딴곳에 오두막을 지으셨다는 이야기는 정말 유명합니다. 선생님께서는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철학자로 꼽히지만, 동시에 나치에 협력했던 과거 때문에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이 고독한 숲속에서, 선생님께서는 평생 무엇을 사유하셨나요?
환영하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여기까지 찾아온 그대의 열정이, 내가 평생을 바쳐 좇았던 그 ‘질문’을 들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군.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나의 실수, 나의 과오에 대해서도 말이오. 그것은 내가 짊어져야 할 나의 운명이겠지. 하지만 내 개인의 삶이 어떠했든, 내가 평생을 바쳐 단 하나의 별을 좇아온 ‘사상가’라는 사실은 변치 않소.
내가 던졌던 질문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소. 하지만 서양 철학 전체가 지난 2천 년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질문이었지. 그것은 바로 “존재(Sein)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오.
‘존재란 무엇인가?’라니요? 너무나 거대하고 막연하게 들립니다. 사람들은 보통 ‘존재하는 것들’, 예를 들어 책상, 나무, 인간 같은 개별적인 ‘존재자(Seins)’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그것들을 ‘있게’ 만드는 ‘있음’ 그 자체, 즉 ‘존재’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거요! 바로 그 지점이 서양 철학의 불행이 시작된 곳이오! 플라톤 이래로, 철학은 ‘존재’ 자체를 묻는 대신, 눈앞에 있는 ‘존재자’들만을 탐구해왔소. ‘이 책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오. 철학은 ‘존재’를 망각(Seinsvergessenheit)하고, 그저 존재자들을 계산하고, 분석하고, 지배하는 기술로 전락해 버렸지.
나는 이 ‘존재 망각’의 역사를 끝내고 싶었소. 그러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소? ‘존재’라는 막연한 개념을 허공에서 탐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실마리가 있소. 그것은 바로 수많은 존재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유일한 존재자. 바로 ‘인간’이오. 나는 이 특별한 존재자에게 ‘현존재(Dasein, 다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소. ‘거기에-있음(There-being)’이라는 뜻이지. ‘존재’의 의미를 밝히기 위한 우리의 유일한 입구는, 바로 이 ‘현존재’, 즉 우리 자신의 존재 방식을 분석하는 것뿐이라오.
2. 현존재, 세상 속에 던져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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