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경윤 33 : 철학자와 인터뷰 7

제7장. 발터 벤야민

by 김경윤

제7장. 발터 벤야민 : 폐허 속에서 희망의 편린을 줍다

- "진보는 폭풍, 역사는 폐허 위에 쌓인다"


1. 파리의 한 낡은 도서관, 책 더미에 파묻힌 이방인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 방대한 국립도서관에서도 선생님을 찾기란 쉽지 않군요. 마치 책이라는 미로 속에 스스로를 숨기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철학자, 문학비평가, 번역가, 사상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어떤 이름도 선생님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안정된 직업 없이 여러 도시를 떠도는 이방인으로 사셨는데, 선생님께 ‘집’이란 어떤 의미였나요?


…집이라… 허허, 내게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이오. 나는 독일 베를린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 안락한 유년 시절은 결코 나의 진정한 집이 아니었소. 나는 언제나 그 세계에 이질감을 느끼는 이방인이었지. 아버지가 원하는 실용적인 학문 대신, 나는 칸트의 철학과 보들레르의 시에 빠져들었소.

나는 학자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대학이라는 제도 또한 나를 받아주지 않았소. 나의 교수 자격 논문은 ‘너무 난해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나는 평생을 정식 직함 없는 ‘민간 학자’로 살아가야만 했지. 히틀러가 등장한 이후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조국에서 쫓겨나, 파리와 이비사, 덴마크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어쩌면 내게 진정한 집은, 바로 이곳, 도서관이었는지도 모르겠소. 혹은 파리의 낡은 아케이드(Arcade)나, 도시의 뒷골목을 하염없이 걷는 ‘산책자(Flâneur)’의 시선 속에서 잠시나마 안식을 찾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정착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것이 흘러가고 사라지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 과거의 흔적들을 수집하고 그 의미를 읽어내는 데 평생을 바쳤소. 나의 사유는 정돈된 서재가 아니라, 언제나 길 위에서, 경계 위에서 이루어졌지.


2. 아우라의 몰락,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길 위의 사상가’ 셨군요. 선생님의 글 중에서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글은 아마도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일 겁니다. 사진과 영화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술 작품의 ‘아우라(Aura)’가 사라졌다는 진단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우라’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이 사라졌다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우라… 그것은 아주 미묘하고 섬세한 개념이오. 자, 상상해 보시오. 그대가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원본 앞에 서 있다고. 그대는 그 그림에서 무엇을 느끼겠소?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 내 앞에 현존하는 단 하나뿐인 원작. 레오나르도의 손길이 직접 닿았던 바로 그 붓 터치. 그 그림이 겪어온 역사와 전통의 무게. 바로 이것, 즉 ‘지금, 여기에 있는 단 하나뿐인 현존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롭고 종교적인 분위기, 그것이 바로 ‘아우라’요.

그런데 사진 기술이 발명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소. 우리는 이제 <모나리자>를 수백만 장 복제해서 엽서로 만들고, 책에 싣고,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되었지. 복제품은 더 이상 ‘지금, 여기’에 얽매이지 않소.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소. 이 과정에서 원본만이 가졌던 유일무이한 아우라는 급격히 시들어지고 몰락하게 되는 것이오.


아우라가 사라졌다는 게, 왠지 예술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처럼 들려서 조금 슬프게 느껴지네요.


물론 그런 측면도 있소. 예술이 더 이상 숭배의 대상이 아닌, 일상의 소비품이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아우라의 몰락에서 오히려 거대한 해방의 가능성을 보았소.

아우라는 본질적으로 귀족적이고 권위적인 것이었소.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만이 원작을 소유하고 감상할 수 있었지. 하지만 이제 예술은 복제를 통해 그 신비로운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수많은 대중들의 곁으로 다가올 수 있게 되었소. 예술은 더 이상 ‘제의적 가치(cult value)’를 갖는 종교적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비평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전시적 가치(exhibition value)’를 갖는 정치적 대상이 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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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장자, 예수, 부처, 디오게네스를 좋아하는 인문학 작가입니다 . 인문학적 소재로 30여권의 책을 썼습니다. 현재 가파도 매표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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