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장 폴 사르트르 : 자유라는 형벌, 인간이라는 위대한 미완성
-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1. 파리의 한 카페, 시끌벅적한 지성의 중심에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파리의 상징과도 같은 이 카페 드 플로르에서 선생님을 뵙게 되니, 마치 20세기 프랑스 지성사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기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곳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를 비롯한 여러 지식인과 교류하며 글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철학자이시면서 동시에 소설가, 극작가, 그리고 정치 운동가이셨습니다. 심지어 1964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시기까지 했죠. 대체 선생님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정말 경이롭습니다.
(짙은 뿔테 안경 너머로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파이프에 불을 붙인다)
하하! 정체라니! 나는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오. 그리고 ‘참여(engagement)’하는 사람이었지. 내게 철학과 문학, 그리고 정치는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소. 그것들은 모두 내 삶의 단 하나의 질문, 즉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각기 다른 방식의 투쟁이었을 뿐이오.
나는 고상한 상아탑에 갇혀 세상을 관조하는 철학자가 되기를 거부했소. 철학은 책 속에 박제된 진리가 아니라, 바로 이 시끌벅적한 카페의 소음 속에서, 저 거리의 투쟁 속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한다고 믿었지. 나의 철학적 사유는 언제나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현실, 즉 나치 점령하의 파리, 알제리 전쟁, 68 혁명과 같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태어났소.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것도 같은 이유요. 작가는 ‘제도’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하오. 내가 노벨상이라는 권위를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글은 자유로운 저항의 무기가 아니라, 박물관에 전시된 고리타분한 유물이 되어버릴 테니까. 나는 죽는 순간까지 ‘장 폴 사르트르’라는 이름의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쓰고 행동하는 ‘실존’으로 남고 싶었소.
2. 외할아버지의 서재, 그리고 추(醜)의 발견
‘참여하는 지식인’의 삶, 정말 멋집니다. 선생님의 유년 시절은 조금 독특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독일어를 가르치시던 외할아버지의 거대한 서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요. 그때의 경험이 ‘작가 사르트르’의 탄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아, 슈바이처 박사님이셨던 내 외할아버지의 서재! 그곳은 나의 천국이자, 나의 모든 것이었소. 나는 키가 아주 작고, 심한 사시(斜視) 때문에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지. 친구도 없이 늘 혼자였던 나에게 유일한 친구는 바로 책이었소. 나는 할아버지의 서가에 꽂힌 수천 권의 고전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치웠지.
나는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책을 ‘숭배’했소. 책 속에 담긴 위대한 이야기와 영웅들의 삶이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졌지. 그래서 나는 아주 일찍부터 결심했소. “나도 저 위대한 작가들처럼 글을 써서, 나의 존재를 정당화하겠다!”라고 말이오. 글쓰기는 추하고 보잘것없는 나의 현실을 구원해 줄 유일한 희망이었소.
하지만 동시에 나는 깨닫고 있었소. 내가 아무리 멋진 글을 쓴다 해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흉측한 꼬마라는 사실을. 바로 이 ‘이상적인 나(책 속의 영웅)’와 ‘현실의 나(추한 꼬마)’ 사이의 거대한 균열 속에서, 내 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들이 싹트기 시작했소. 인간 존재의 ‘우연성’, 그리고 세상과 나 자신을 향한 지독한 ‘구토감’ 같은 것들 말이오. 나의 첫 소설 『구토』는 바로 그 시절의 경험에서 태어난 작품이라네.
3.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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