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칼 포퍼 : 열린 사회를 향한 투쟁
- "우리는 틀릴 수 있고, 당신도 틀릴 수 있다"
1. 런던 교외, 한 노신사의 정원에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영국까지 찾아와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런던 교외의 이 자택은 정말 평화롭네요. 특히 직접 가꾸신다는 이 정원이 참 아름답습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철학자이자, ‘열린 사회의 파수꾼’으로 불리시는 선생님의 일상이 이렇게 소박할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허, 온화하게 웃으며,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어서 오시오, 미래에서 온 젊은 친구. 기나긴 여행에 힘들지는 않았소? ‘위대한 철학자’라니, 과찬이오. 나는 그저 진리를 사랑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 그리고 이 늙은 몸을 움직여 정원의 잡초를 뽑는 것을 즐거워하는 소박한 정원사일 뿐이라오. 보시오, 이 장미들을. 내가 아무리 완벽한 장미를 꿈꾸며 가지치기를 해도, 벌레가 생기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가지가 뻗어 나오기도 하지. 하지만 괜찮소. 다음에 더 나은 방법을 시도해 보면 되니까. 내 철학도 사실은 이 정원 가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오.
정원 가꾸기와 철학이 다르지 않다니, 정말 흥미로운 시작인데요? 보통 철학은 아주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선생님의 철학이 정원 가꾸기처럼 소박하고 명쾌하다면, 오늘 인터뷰가 정말 기대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원래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셨는데, 어쩌다 이곳 영국에 정착하게 되셨나요? 선생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아, 나의 젊은 시절이라... 그것은 내 철학의 뿌리이자, 내 삶의 가장 뜨거웠던 용광로와 같은 시간이었지. 나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10대 시절을 보냈소. 당시 빈은 세상의 모든 새로운 생각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대한 실험실과도 같았지. 정신분석학을 만든 프로이트, 개인심리학의 아들러,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마르크스주의까지! 젊고 똑똑한 친구들은 모두 이런 위대한 사상들에 빠져들었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소.
특히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매료되었지. 자본주의는 반드시 망하고, 노동자들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그들의 예언은 너무나 명쾌하고 강력해 보였소. 나는 공산주의 학생 연맹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했지. 마치 세상을 구원할 비밀 공식을 손에 넣은 것만 같았소.
와, 선생님께서 공산주의자셨다니! 정말 의외인데요? 지금 선생님의 철학과는 정반대의 길처럼 보이거든요.
그렇지? 바로 그 지점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소. 1919년, 내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였지. 빈의 한 거리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소. 내 눈앞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여러 명 죽어 나갔지. 나는 엄청난 충격과 죄책감에 휩싸였소. 왜냐하면 그 시위는 우리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투쟁을 격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추긴 면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소. ‘우리가 믿는 이 위대한 이론이, 이토록 확신에 찬 예언이, 과연 몇몇 젊은이들의 목숨을 희생시킬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마르크스의 이론이 정말 ‘과학’이라면, 어떻게 이토록 무자비한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가?’ 이 끔찍한 질문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소. 그날 이후, 나는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다오. 그리고 내 평생의 화두가 될 질문을 품게 되었지. “대체 무엇이 진짜 ‘과학’이고, 무엇이 ‘사이비 과학(가짜 과학)’인가?”
2. 백조는 모두 하얗다고? 검은 백조 한 마리면 충분해!
열일곱 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경험이었네요. 그 충격이 평생의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졌다니…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진짜 과학’과 ‘가짜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찾기 시작하셨군요. 당시 유행하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아들러의 개인심리학도 비판적으로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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