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경윤 83 (2026. 4. 30.)
-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규칙, 그것이 정의다"
1. 하버드의 한 연구실, 조용하고 신중한 거인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선생님의 책, 『정의론』은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서로 꼽힙니다. 그런데 책의 명성과는 달리, 선생님께서는 언론 인터뷰나 대중 강연을 거의 하지 않으시는 걸로 유명합니다. 평생을 하버드에서 조용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에만 몰두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 어서 오시오, 젊은 학도. 환영합니다. 음… 내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내 생각에 철학자의 삶은, 그의 사적인 삶이 아니라 그가 남긴 ‘주장’과 ‘논리’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 얼굴이나 내 삶의 이야기가, 내가 평생을 바쳐 세운 ‘정의’에 대한 논증보다 더 중요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철학은 조용한 서재에서 이루어지는, 끈기 있고 성실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끌벅적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쇼가 아니지요.
오직 논리 그 자체로 평가받고 싶으셨군요. 그런 선생님의 엄격한 학자적 태도가 오히려 더 큰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셨고,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참상을 목격하신 경험이 선생님의 삶과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경험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나는 젊은 시절, 신앙심 깊은 학생이었고, 목사가 되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는 태평양 전선에서 내 동료들이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필리핀에서는 일본군의 잔혹한 학살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깊은 회의에 빠졌습니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는가?
나는 전쟁터를 떠돌며 깨달았습니다. 인간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정의(Justice)’의 문제라는 것을요. 어떻게 하면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이런 끔찍한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공정한 사회의 기본 규칙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싹튼, 내 평생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는 대신, 나는 ‘정의’의 원리를 찾는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겁니다.
2. 무지의 베일, 그리고 정의의 두 원칙
전쟁의 참상 속에서 ‘정의’라는 화두를 발견하셨군요.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공리주의’를 비판하시면서, 완전히 새로운 정의의 원리를 제시하셨습니다. 공리주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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