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가와 사토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언젠가 나도 죽어서 이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질 테고 무르고 새하얀 뼈만 남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아프거나 힘들거나 하는 세상의 일에서 해방된 후일 테니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아도 된다. 네가 몹시 슬픈 이유는 틀림없이 아직 네 안에 ‘죽음‘과 ‘외로움‘이 뒤섞여 있는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1년쯤 지나면 ‘죽음‘을 외로움과 떨어뜨려 놓고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죽음‘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 외로움도 조금씩 치유되어 갈 거야. ‘시간이 약‘이지. 나는 네가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의식을 가지기 바란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할수록 ‘죽음‘에는 의미가 더해져 간다.
나도 요새 어쩐지 죽음에는 에너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부모의 죽음에는 아이의 인생을 움직일 정도로 엄청난 힘이 있어. 슬프다, 슬프다 하면서 울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고 또 흘러가고 있을 거야. 어느 날의 이별 경험이 슬픔에 주저앉은 너의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릴 거야, 그러면 너는 다시 바빠질 테고, 바쁜 것은 행복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기를. (154~157쪽)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흐름출판, 2020)를 읽어보라고 추천받았을 때, 속으로 ‘엽기적인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인욕망은 엽기적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만큼 여러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문화적 현상이어서 도대체 어떤 책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추천작가가 건낸 책을 읽어보고 나서 엽기가 아니라 감동 만화에세이였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그린 이 만화책은 미야가와 사토시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주 전함 티라미스》라는 시리즈 만화의 원작자로 알려진 사토시는 도쿄에서 생활하는 지방 출신 요괴들의 비애를 그린 만화 《도쿄 백귀야행》 으로 2013년에 데뷔했다. (뒤져봤더니 우리나라에서는 번역이 안 되어 있다.) 그는 지금 도쿄에서 정력적으로 만화가 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는 일본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꼭 챙겨봐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죽음이 늘어난다. 10년 전만 해도 이전 세대의 죽음을 치러야했는데, 이제는 동시대인들의 죽음을 경험한다. 가까운 선후배, 지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간접적으로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고2 때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할 때만 하더라도 나의 죽음은 상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경구가 나의 삶의 그림자처럼 드리워있다.
한편 한 사람의 죽음은 단지 그 사람의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주변의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상실의 슬픔으로 절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써 그 슬픔을 꾹꾹 눌러 참는 사람들도 있지만, 슬픔을 참는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그 사람의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고여있게 된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냉혈한이라 불리는 사람도 피끓는 슬픔을 간직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단지 남들에게 표현하지 못했을 뿐. 이 만화에세이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가족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 표현양식은 다르지만 가족의 상실에 대한 슬픔이 절절하다. 이 작품이 연재되었을 때 500만 뷰의 누적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그 다양한 슬픔에 대한 공감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자기 몸 속에 영원히 간직하고픈 작가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라고 속으로 말한다. 그 속마음은 엽기도 아니고, 공포도 아니다. 오히려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예수의 살이고 피라 말했던 기독교인들의 방식처럼, 사라진 것을 영원히 현재화하려는 거룩한 몸짓일수도 있다. 만화는 그 작가의 슬픔을 천천히 따라가며 우리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단순하고 투박한 만화체는 오히려 이러한 정서를 잘 담아내는 장점으로 작동하면서 몰입감을 더한다. 주변에 상실의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손수건처럼 건낼 수 있는 좋은 만화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이 책을 권유해준 이수연 작가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