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방송 대본 쓰기 9 : 지구생태

움베르토 에코,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꿈터)

by 김경윤

오승재 새로 나온 책도 소개해드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지혜와 지식도 나눕니다.

오늘 이 시간을 위해서 인문학놀이터 ‘참새방앗간’ 지기로 활동하고 있는 김경윤 작가를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김경윤 네, 반갑습니다.


오승재 1. 건강하시죠?


김경윤 네 염려해주신 덕분에 건강합니다. 요즘은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책 보고, 글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 생애 최고로 많이 손을 씻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인들과의 모임도 자제하고 있어서 카렌다의 스케줄이 텅 빈 것 같습니다. 그나마 오늘은 이렇게 EBS에 방문해서 방송을 하네요.


오승재 사무실에서 책을 보신다고 하니, 읽으신 책이 많으시겠어요?


김경윤 유흥비의 대부분을 책값에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책을 구입할 때에는 지역경제를 위해서 동네책방을 이용합니다. 지난 주에 5권 정도 사서 읽고 있는 중이고, 이번 주에도 4권을 주문해서 2권은 구입하여 읽고 있습니다.


오승재 동시에 여려 권의 책을 읽으시나봐요?


김경윤 네, 저는 동시에 서너 권의 책을 읽는 편입니다. 아침에 가볍게 읽는 책이 있고,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서 읽는 책, 글을 쓸 때 참고하려고 읽는 책, 그냥 또는 문득 또는 갑자기 읽고 싶어서 읽는 책 등이 있습니다.

오승재 그러면 이번에 소개해 주실 책은 어떤 책인가요?


김경윤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책은 갑자기 읽고 싶어서 읽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쓴 유일한 창작동화집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오승재 2. 평소에 동화책을 많이 읽으시나봐요?

김경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거의 매일 읽다시피 했는데요. 요즘은 뜸한 편입니다. 15년전 쯤인가 아내의 권유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지레짐작으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그냥 재밌고 쉬운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두 권 읽다보니까, 오히려 동화책이 일반책보다 훨씬 생각할 꺼리를 많이 주고,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나중에는 교회목사님하고 동네 쌀집 아저씨하고 ‘동화 읽는 아빠모임’을 결성해서 한 5년간 정기적으로 연구하듯이 읽었습니다. 혹시 기자님은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많이 읽으시는 편인가요?


오승재 (간략한 대답) 그런데 움베르토 에코라면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작가 아닌가요?


김경윤 네 맞습니다.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한 소설인데, 수도원에서 <요한묵시록>의 예언에 따라 연쇄살인이 일어나자 수도원장의 의뢰를 받은 영국의 수도사 윌리엄과 그의 시자 아드소가 사건을 수사하며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움베르토 에코는 이 소설책으로 과거의 기호학자, 철학자라는 타이틀보다 더 유명한 소설가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지요. 이후에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 아주 난해하고 수준높은 교양을 자랑하는 소설을 계속 썼지요.


오승재 그 외에도 철학책이나 미학책, 기호학책이나 에세이 등은 많이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동화책을 쓴 것은 금시초문인데요.


김경윤 저도 에코가 동화책을 썼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고, 알자마자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2월 14일에 출시된 책이니까, 아주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오승재 3. 왠지 혹 하는데, 책 내용을 소개해주시죠.


김경윤 120쪽 안팎의 얇은 책이라서 오히려 자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이 책은 3개의 짧은 동화모음집입니다. 동화 제목은 《폭탄과 장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뉴 행성의 난쟁이들》입니다. 제목으로 짐작하시겠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우화형식을 띤 풍자이야기입니다.

《폭탄과 장군》은 주인공이 원자 ‘아토모’와 나쁜 장군인데요. 원자폭탄 속에 원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아주 참신하지요. 원자들이 모여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데 원자폭탄은 원자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원자를 쪼개서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진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원리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폭탄이 되는 거지요. 모여서 세상을 만들 것인가, 쪼개져서 세상을 파괴할 것인가, 소설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오승재 궁금하네요. 어떻게 되나요?


김경윤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이 되니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려고요, 하지만 원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에코의 기발함은 참으로 동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인데요. 새로운 생명체를 탐사하려고 떠나는 3명의 지구인이 화성인을 만나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어요, 우주인은 미국인, 러시아인, 중국인으로 설정했는데, 모두가 출발할 때는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관계로 떠나지요, 말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니까요. 그러다가 화성에 도착하여, 이유는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없지만, 이 셋은 우호적 관계를 맺게 되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살지 않을 것 같았던 화성에는 새도 살고, 물도 흐르고, 심지어는 팔이 여섯 개나 달린 화성인을 만나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궁금하시면 구입하셔서 읽어보시죠.


오승재 책을 소개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만 더 생겨나게 하네요. 마지막 이여기는요?


김경윤 마지막 이야기는 《뉴 행성의 난쟁이들》인데요. 우주탐험가가 우주선을 타고 생명체가 살고 있는 새 행성을 찾다가 ‘뉴’라는 행성에 난쟁이들이 살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지구의 문명을 공짜로 전해주겠다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막판의 역전이 재밌는 동화라고 할 수 있지요.


오승재 결론은 모두 모르겠지만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모두 지구를 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김경윤 맞습니다. 역시 예리하시네요. 이 세 동화는 모두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위해서 쓰여진 이야기라고 볼 수 있어요. 작가가 철학자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동화를 읽으면서 크게 세 가지 주제를 생각해볼만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또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같음과 다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요. 철학적 용어로는 ‘동일자와 타자’라고도 하는데, 현대철학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주제입니다. 같은 편과 다른 편을 나누고 경쟁하고 전쟁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어요. 제목인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도 점차도 커지는 이름이지요. 다름만을 주목하고 서로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도 러시아인도 중국인도 모두 지구인이고, 이들 지구인과 화성인이 서로 다르지만 우주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같은 존재임을 상상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제목이지요.

오승재 그러면 세 번째 이야기의 철학적 주제는 뭔가요?


김경윤 제목이 <뉴 행성의 난쟁이들>이잖아요. 저는 이 동화를 읽으면서 ‘어른과 어린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떠올렸어요?


오승재 ‘어른과 어린이’도 철학적 주제가 될 수 있나요?


김경윤 그럼요. 동양에서는 춘추시대에 노자가 쓴 《도덕경》과 명나라 때 이탁오가 쓴 《분서》라는 책에서, 문명이나 선입견에 물들지 않은 어린이를 예찬하고 있어요. 그리고 서양에서는 현대철학자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낙타와 사자와 어린이를 이야기하면서 현실에 순종하는 낙타에서 저항하고 파괴하는 사자를 넘어,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어린이를 예찬하고 있지요.


오승재 작가님 말씀을 들어보니 은근 설득이 되는데요.


김경윤 움베르토 에코는 낡고 타락하고 더럽혀진 올드 행성인 지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뉴 행성의 난쟁이들, 그러니까 새로운 행성인 지구를 꿈꾸는 어린이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에코의 마지막 동화를 ‘어린이를 위한 도덕경’이라고 별명붙이고 싶네요.


오승재 4. 그밖에 소개해주고 싶으신 것이 있나요?


김경윤 이 동화책의 그림작가인 에우제니오 카르미의 삽화들을 꼭 살펴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에우제니오 카르미의 생몰연대를 보니까 1920년에 태어나 2016년에 돌아가셨더라고요. 100살 가까이 사신 건데, 에코보다는 12년 전에 태어나 에코와 같은 해에 사망했어요. 원래 삽화는 그리지 않는 화가였는데, 에코 책에 처음으로 삽화를 그렸다고 하더라구요. ‘이미지 제작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삽화 한 장 한 장 독특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고요. 그림에 이것저것을 접착하고나 오려붙이는 콜라주기법을 이용하여 동화의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오승재 5. 그렇군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책이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림도 정말 중요하지요. 책의 한 대목을 소개해주시지요.


김경윤 뉴 행성에 도착한 지구인들이 난쟁이에게 초대형망원경으로 지구를 보여주자, 이를 지켜보면서 난쟁이들과 지구인이 나누는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에코의 풍자정신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길 위에 길게 늘어서 있는 쇠로 만든 상자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이번에는 넷째 난쟁이가 물었습니다.

“자동차랍니다. 가장 멋진 발명품이지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아주 빨리 갈 때 이용합니다…….”

“그런데 왜 움직이지 않아요?”

넷째 난쟁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우주 탐험가는 당황해서 대답했습니다.

“그건……보다시피,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종종 길이 막히기도 하지요…….”

“그러면 길가에 누워 있는 다친 사람들은 뭡니까?”

넷째 난쟁이가 또 물었습니다.

“교통이 막히 않을 때 너무 서둘러 달리다가 다친 사람들입니다. 아시겠지만, 이따금 사고가 나지요…….”

그러자 넷째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저 상자들은 너무 많을 때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앞으로 갈 때는 사람들이 다치는군요. 참 안됐어요.”


오승재 의미심장하군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년도에 작고한 세계적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유일하게 남긴 동화책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를 참새방앗간 지기 김경윤 작가님의 추천으로 만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윤 네, 감사합니다.


<방송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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