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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0. 2020

2020 독서노트 : 이지성의 에이트

이지성 《에이트》(차이정원, 2019)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환경이 어떠한가.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을 쥐고 있다시피 한다는 강남 8학군을 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주입식 교육을 더 강하게 하지 못해서 안달하고 있지 않은가. 선진국들은 다들 미래에 인공지능의 IQ가 1만을 돌파하기 때문에 주입식 교육은 아무 의미 없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인공지능이 절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말이다. 이는 비유하면 이미 총이 발명되었고, 다들 총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우리만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활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는 이미 전기가 발명되었고 다들 전기 문명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우리만 아이들에게 좀 더 오래 타는 양초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3쪽)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처럼 살다가 어느 날 당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인공지능의 주인이 되는 나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나는 당신이 후자를 선택하길 바란다. 미래에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당신에게 참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강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

당신이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길을 걷기 시작하면 당신 주변의 사람들도 그 길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그 길을 걷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때 비로소 우리나라 앞에 인공지능 강국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27~8쪽)     


오랜만에 나의 철학책을 주로 낸 <생각의길> 편집주간과 수학 인문학 저자로 유명한 후배 김용관과 어울러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전후하여 나눈 얘기는 흥미진진했다. 소위 진보정권이 권력을 쥐면 자기계발서들이 유행한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보수정권이 권력을 잡으면 사회정의와 관련된 책들이 유행한다는 것. 편집주간은 이에 대한 예시로 노무현 정권 때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가 잘 팔렸고, 이명박근혜 시절에는 <정의란 무엇인가> 류의 책이 유행했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덧붙이길, 21세기에 혁명을, 그것도 무혈혁명을 성공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이후로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총선 모두 진보정권(?)이 대다수를 차지한 역사도 세계사에 유래가 없다는 논거를 들어, 앞으로 출판시장의 트렌드는 자기계발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이 말을 편집주간이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은 내가 원고의 일부로 넘긴 철학류는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트렌드가 변했으니, 철학과 인문학도 그러한 트렌드를 읽어야 하지 않느냐는 충고도 해주었다. 적어도 철학과 인문학이 자기계발서의 문법을 따를 필요가 있다는 말도 슬쩍 내비치었다. 나는 그런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편집주간은 이지성의 《에이트》(차이정원, 2019)를 꼽았다. 이지성은 《리딩으로 리딩하라》(2010)라는 책으로 인문학 자기계발서(?)에 유행을 퍼뜨렸던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다.

나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소개된 엘리트주의를 경계했고, 그가 제시하는 독서목록이 한국의 교육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후로 나온 이지성의 책에 대해서는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 자리에서 이지성의 책이 다시 소환된 것이다. ‘리딩’에서 ‘에이트’까지는 10년의 시간차가 있었다. 그동안 이지성은 어떻게 변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점심식사와 대화를 마치고 헤어진 후, 서점에 연락하여 ‘에이트’가 있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있었다.


결국 구입하여, 내친김에 읽어 버렸다. 책은 술술 잘 읽혔다. 특히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읽거나 참고했을 방대한 자료는 책 내용의 신빙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호기심에 이지성의 책쓰기 역사를 인터넷 서점에서 검사하니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 서적으로부터 출발하여 학습법을 거쳐 ‘꿈꾸는 다락방’(2008)을 거쳐 ‘스물일곱 이건희처럼’(2009)을 거쳐 ‘자기계발’(2010)로 가는 길이 그려졌다. 그리고 ‘에이트’는 인공지능시대를 겨낭한 글이었다. 부제가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이다.


이 책은 크게 세 part로 구성되어 있다. Part 1에서는 인간이 기계에 대체될 수밖에 없는 근거를 들며, 그러한 시대에 소위 선진국에서는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설명한다. Part 2에서는 10년 뒤에는 인공지능이 대세를 이룰 것이며, 그때에는 극소수의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과 대다수의 지시를 는 사람일 것이며, 한국인의 99.997%가 프레카리아트로 살아가는 암울한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Part 3에서는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을 8가지 제시한다. 책 제목인 ‘에이트(eight)’다. 어렸을 적 디지털을 차단하고, 공감과 창의능력을 키울 수 있는 평생유치원이 필요하며, 지식에서 벗어나 공감과 창의가 가능한 존재가 되며,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디자인 싱킹을 하고, 인간만의 고유능력인 철학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예술(문학)과 과학과 현실을 융합하고, 문화인류학의 경험을 쌓고, 봉사활동을 통해 인간다운 일을 하라고 충고한다. 8가지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감’과 ‘창의성’이다. 모든 활동은 공감과 창의성을 키우는 것으로 귀결되고, 이러한 능력이야말로 인공지능 아래로 내려가서 지시를 받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지시하는 1%의 최고 리더들의 덕목임을 누차 강조한다.

이지성은 아주 절박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시대를 진단하고 충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고 있었다. 한 시대를 미리 감지한 예언자가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회를 향해 외치는 목소리가 너무도 절절했다. 그의 열기가 책을 넘어 훅훅 전달되었다. 하지만 나는 씁쓸했다. 10년 전의 이지성과 지금의 이지성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지성은 엘리트주의를 버리지 못했다. 세상을 리더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인공지능시대에 시대착오적으로 교육하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삶은 다시 비참해질 것이다. 아니, 비참한 삶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비참함의 해결책을 1%의 리더에게 기대는 것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 부의 집중이나 세계적 빈곤의 문제도 인공지능의 시대가 와서 생긴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모순이 더욱 심화되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시대를 선도하는 리더를 양성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공지능시대에 맞는 경제구조의 근본적 변화이다. 99.997%가 1%에 의존하는 삶이야말로 바로 지옥 아니겠는가? 가난과 비참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비참한 삶이 없도록 미래를 혁명하는 것이 더 필요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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