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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2. 2020

2020 독서노트 : 창의력? 창의성!

김경일,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샘터사) 

사실 인간과 컴퓨터는 목적 자체가 다른 지능체계입니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뛰어나서 인간이 범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지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더 적절할지 모릅니다. 컴퓨터의 목적은 연산과 저장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지닌 지적 시스템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해와 평가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성능이 좋아지는 컴퓨터와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31쪽)     


샘터사에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이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다음 세대에 꼭 한 가지만 전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태의 이 교양시리즈는 이미 48종의 책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중에서 42번째 책, 요즘 핫하게 뜨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이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제목은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샘터사, 2019) 부제가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상황의 힘’이다.

책은 청소년들이라도 충분히 이해할 정도의 어휘로 그 어렵다는 인지심리학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인지심리학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청소년들의 삶에 인지심리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다양하고 재미난 사례를 통해서 풀어나간다. 요즘은 워낙 SNS가 발달하여, 유튜브 등을 통해 김경일 교수의 동영상이 무수히 떠돌고 있기 때문에, 동영상을 많이 섭렵한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만,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일종의 데자뷔 현상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책 한 권의 분량을 지루하지 않게 술술 읽히게 만드는 힘은 분명 저자의 필력일 것이다. 워낙 친절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강의로 정평나 있는 저자인지라 책 역시 강의식으로 편하게 구성했다.

인지심리학은 탄생한 지 7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최신 심리학이다. 인간의 심리를 연산가능한 형태로 구성할 수 있다면,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만들 수도 있다는 공학적 발상에서 인지심리학은 출발한다. 그러니까 철학에서 심리학이 탄생했다면, 거기에 공학적 결합을 한 이과적 심리학이 인지심리학이다.

심리학의 공학적 접근은 오히려 공학적 접근이 불가능한 지대를 탐구하는 데까지 이른다. 컴퓨터와 인간의 같은 점이 있다면, 근본적으로 다른 점도 있을 텐데 인지심리학은 그러한 영역에 대한 관심도도 높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는 없지만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메타인지’이다. 메타인지란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알고 있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바로 인지와 메타인지의 격차에서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컴퓨터의 속도를 능가하는 판단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착각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마도 ‘창의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일 텐데, 저자는 의도적으로 ‘창의력’이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창의성’이란 말을 선택한다. 그것은 마치 창의력이라는 단어가 이미 주어진 능력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인간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순간은 아이큐가 높아서이거나 특별나서가 아니라, 낯선 상황, 낯선 주제를 만났을 때 발휘되는 것임을 각종 실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저자가 책의 제목을 왜 그렇게 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모든 사람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발휘 못하는 것은 단지 끄집어낼 수 있는 낯선 상황에서 훈련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다양한 낯선 상황에 놓이는 것이 관건인 셈. 그래서 저자는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유추나 은유, 추상을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의 감상을 권장하기도 하고, 낯선 상황에 자기를 던지는 여행을 말하기도 하고, 직접경험이 아니더라도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독서를 권유하기도 한다. 아울러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해보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가르침이 최상의 배움인 셈. 마지막으로 관계성 속에서 생겨나는 ‘원트 Want’와 개인적 욕망인 ‘라이크Like’를 접근동기와 회피동기와 연결시켜 설명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불안하거나 부정적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회피동기에 발로일까? 나에게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몸의 상처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그만큼의 비중으로 돌보지 않는 것일까? 등등 수많은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다.


이 책은 적어도 내가 창의적인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점, 그럼에도 내가 창의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값을 충분히 한다. 176쪽의 가벼운 분량이라 부담도 없고, 책값도 정확히 1만 원이다. (10% 할인하면 9,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추신> 샘터사의 아우름 시리즈는 다양한 주제를 가벼운 가격에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자칫 빠졌다가는 누적 지출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지출은 얼마든지 치를 만 하지만. 말은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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