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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4. 2020

2020 독서노트 : 펜더믹 이후 뉴타입

야마구치 슈, 《뉴타입의 시대》(인플루엔셜, 2020)

우리는 대규모의 인적 자원을 투입해서 광물과 석유 등 지구의 자원을 탕진하듯 만들어낸 ‘생산물’의 대부분을 반드시 후손에게 남겨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손에게 남겨주지 않고, 우리 대에서 처분해도 상관없는 물건, 즉 ‘쓰레기’라는 말이다. 우리는 엄청난 노동과 자원을 투입해서 열심히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의미를 먹고사는 생물이지만 쓰레기를 만들어 파는 데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의미가 없는 일을 하는 인간은 반드시 무너진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에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이 이렇게 증가한 것은 그 때문이다.

현대 기술의 진화는 더욱더 강력해지고 있으며, 표면적인 의미인, 소위 생산성은 앞으로도 높아질 것이다. 이때 문제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인간성humanity’이 전혀 진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100년 전에 비해 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이 더욱 힘을 갖게 되는 반면에,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은 오히려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는 과거 100년간 반복해온 어리석은 행동을 더욱 가속시키며, 더욱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느라 방대한 쓰레기를 끊임없이 생산해낼 것이다.(313쪽)


손에 가지 않는 책들이 있다.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 관련 책들이다. 자기계발서는 몇 권 읽어보았지만. 이익보다는 불쾌감이 더 들었기 때문이고, 경제경영서는 나의 삶의 나와바리가 아니라 돈 버는 직장인들의 필독서들이라 일찌감치 손에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이 있었는데, 구본형이 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유문화사, 2007)과 야마구치 슈가 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북스, 2019)이다. 이 책들을 읽고 재밌다고 생각한 점은 인문학(철학)을 삶이나 경제경영에 녹여냈기 때문이리라. (가제는 게 편이라고, 인문학 냄새가 나는 책을 좋아한다.) 구본형의 책은 인문경영서이거나 자기계발서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 경영과 계발의 방향이 성공이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숙과 사유의 재발견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불쾌감 없는 상쾌함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책들은 나올 때마다 읽은 기억이 난다. (구본형은 2013년 5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지면으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야마구치 슈의 최신작 《뉴타입의 시대》(인플루엔셜, 2020)은 그의 최근작에 대한 호감도 작동했고, 코로나 이후의 세계적 변화를 읽어보려는 마음으로 주문하여 반나절만에 읽었다. 단순명쾌한 논리와 설득력 있고 적절한 예시, 그리고 깔끔한 정리는 아먀구치 슈의 글쓰기 특징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다양한 맛을 내면서도 풍성한 재료가 얹혀진 초밥정식을 먹는 기분이다. 첫맛은 풍성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인터넷에 있는 저자의 소개를 옮긴다. “철학과 예술에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찾는 일본 최고의 전략 컨설턴트. 게이오대학교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학미술사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츠를 시작으로 보스턴컨설팅그룹과 A.T.커니를 거쳐 세계 1위 경영·인사 컨설팅 기업인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임원)를 역임하며 조직 전략, 기업 혁신, 인재 육성, 리더십 분야의 전문 컨설턴트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독립 컨설팅펌 라이프니츠 랩(Leibnitz Lab)의 대표이자 히토쓰바시대학원 경영관리연구과 겸임교수, 작가, 강연 연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고교 시절 주로 미술관이나 영화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오랜 관심을 바탕으로, 경영 컨설턴트로서 일하는 동안에도 인재 양성과 조직 혁신에서 ‘비즈니스와 미의식’, ‘직감과 지적 성과’ 등이 어떻게 결합되어 시너지를 내는지를 고민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해왔다.”

내친김에 국내에 출간된 저자의 다른 저서들도 검색해봤다.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앳워크, 2019), 《쇠퇴한 아저씨 사회의 처방전》(한스미디어, 2019), 《그들은 어떻게 지적 성과를 내는가》 (인사이트앤뷰,2015), 《읽는 대로 일이 된다》(세종서적, 2016),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북클라우드, 2018) 등이 있다. (이 중 뒤의 두 권은 품절이다. 특히 맨 마지막 책은 2018년에 나왔는데 품절이다. 이건 이해가 안 된다. 나온 지 2년도 안 되었고, 내가 다음번 책으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뉴타입의 시대》의 논리는 간결하다. 과거를 지배하던 올드타입의 시대는 갔고, 이제 예측불가능한 미래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뉴타입이 필요하다는 게 논지이다. 우선 그는 현대사회의 메가 트렌드를 6개로 정리한다. ① 물질은 풍요롭지만, 삶의 방향성을 잃어간다, ② 정답을 찾는 일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③ 수요를 넘어서는 쓸모없는 일자리와 노동의 대두되었다. ④ 사회 전반에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i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 넘친다, ⑤ ‘규모의 경제’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⑥ 인생은 길어지고, 기업의 수명은 짧아졌다. 특히 지은이가 자주 쓰는 용어는 ④번째 트렌드인데, 압축해서 뷰카(VUCA)사회라 한다. 이러한 뷰카사회를 돌파하는 24가지의 생각의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럼 올드타입과 뉴타입은 어떻게 다른가?  간단히 표로 정리해보자. (일일이 수작업으로 정리하는데 시간이 들었다. 박수 부탁드린다.)

이를 더 간략히 말해보자면, 올드타입은 문제보다는 정답을 찾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며, 규정에 따르고, 협소한 경험에 의지해서 삶을 살고 기업이나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뉴타입은 답보다는 문제를 발견하고,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구상하고, 규정보다는 자신의 철학을 따르며, 이전이 경험이나 지식에 고착되지 않고 이를 리셋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두고 싶은 용도도 3개도 기록해두자. 하나는 뷰카사회라는 말이고, 또 하나는 우연한 발견이라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 마지막으로 당장은 무엇에 쓰일지 모르지만 나중에 써먹기 위해 줍는 행위인 브리콜라쥬(bricolage)이다. 길잃음과 우연성, 놀이와 재미, 개인적 고집과 철학이 미래사회에 중요한 사유와 행위의 덕목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한편 다양한 심리학, 경영학, 철학, 문학적 인용구와 사례가 있어 풍성한 교양을 쌓기에도 도움이 된다. 아울러 딱딱해진 사유를 다시 세팅할 수 있는 책이다. 많은 도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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