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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7. 2020

2020 독서노트 : 공간건축의 인류학

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 (을유문화사, 2020)

디지털과 융합해 가는 이 시대에 창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간다움의 정의를 찾는 것이다. 그 과정 중에 우리가 지난 수백 년간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삶의 형태가 나오면 인간의 가치관이 바뀌고 인간다움도 바뀐다. (402쪽)     


인간과 기계의 융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실제와 가상의 융합이 절실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창조적 영감은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404쪽)     



<알쓸신잡 2>에 나와서 유명해진 유현준이라는 건축가가 있다. 건축이라는 전문적인 분야를 일상생활을 통해서 다양하게 접근하여 설명하는 것에 능한 그는 인문건축가로도 알려져 있다. 인문학과 건축학을 만나는 지대가 그의 포지션이다. 개인적으로 그를 초정하여 강연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수십 장이 넘는 프레젠테이션을 빠르게 넘겨가며 쉴 새 없이 설명하는 그의 강도 높은 강의력은 유익할 뿐 아니라 지적인 포만감을 주기도 했다. 농담 한 마디 없이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은 정말 닮고 싶은 지점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그의 간(間) 학문적인 독서능력과 이를 종합하는 종합력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른바 통섭(統攝)의 능력이다. 이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책이 이번에 나온 신간 《공간이 만든 공간》 (을유문화사, 2020)이다. 부제로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달았는데, 공간과 사유, 공간과 삶의 관계를 통해 우리를 풍성한 건축인문학적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문명의 시작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명사와 그 속에 펼쳐지는 공간(건축)의 변화, 차이, 융합의 역사를 총망라한다. 마치 건축학계의 유발 하라리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지레짐작컨대 이번 책은 유발 하라리의 저술인 《사피엔스》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종교, 언어, 예술, 도시, 게임, 곤충, 산업혁명, 기계혁명, 컴퓨터 등 다방면의 걸쳐 씨줄과 날줄을 잇고 있다.


특히 강수량의 차이가 농작물의 차이(쌀과 밀)를 낳았고, 그 작물을 키우는 방법이 동서양의 삶과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러한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3장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다. (이를 도표화한 것을 사진을 찍어 올린다.)


물론 그러한 사유의 역사가 건축에도 밀접한 관련을 있으며, 서양이 형이상학적 도형과 벽 중심의 건축물을, 동양은 자연적인 형태와 기둥 중심의 건축물을 낳았다는 주장을 밀고 나가는 그의 논리전개력도 퍽 멋졌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세계의 압축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건축물의 융합을 낳았는데, 특히 서양건축물의 변화양상을 동양건축물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대목은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짜릿한 지적 쾌감을 주었다. 이러한 건축학의 ‘이종교배’는 학문과 예술의 이종교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이는 건축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현실적 논거를 들이밀 때 슬쩍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바야흐로 동서양의 차이는 서로에게 자극을 주며 새로운 사상, 예술, 건축, 삶의 양식으로 융합되고 있다. 이울러 동서양은 이제 새로운 현실인 가상현실을 누구나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삶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인간과 자연의 조화뿐만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조화를 통해 괜찮은 미래를 구상할 수 있을지, 아니며 인간의 의한 자연의 파괴가 인간의 파괴로 되먹임되고, 인간과 기계의 갈등이 심화되어 인간공동체에 위기가 닥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각종 질병과 바이러스가 새롭게 창궐하여 인류의 삶의 위협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변화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시점에서  유현준의 신간은 어떤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지 않나 미루어 짐작해본다.  


<추신>

책에 들어있는 건축물의 그림과 도판, 동서양건축의 비교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다, 건축학자도 아닌데, 갑자기 건축물을 설계하고픈 욕망이 생길 정도다. 인공지능과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누구나 자신이 살고픈 집 한 책 정도는 설계할 수 있는 시대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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