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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8. 2020

2020 독서노트 : 독학이라는 삶의 무기

야마구치 슈,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앳워크, 2019)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진행되어 지식의 감가상각이 급속하게 일어나는 현재와 같은 세상에서는 고정적인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독학법은 부담만 클 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인풋된 지식의 대부분은 짧은 기간 안에 ‘지식으로서의 전성기’가 지나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이 독학법을 다룬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책은 독학을 ‘동적인 시스템’으로서 파악함으로써 철저하게 ‘지적 전투력’을 높이는 목적으로 썼다.(7쪽)      


교양을 익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단순히 콤플렉스를 가리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안이하게 교양주의로 도피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더욱 하찮은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 “진짜 아티스트는 상품을 내놓는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에 관해 연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품으로 세상에 충격을 줘보라고 도발하는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진정한 교양인은 풍부한 인생을 영위한다”라는 것이지 않을까?(105쪽)     


야마구치 슈의 《뉴타입의 시대》를 소개했는데, 이번에 소개할 책은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앳워크, 2019)이다. 이 책의 부제는 ‘지적 전투력을 높이는 독학의 기술’이다. 부제만 놓고 보면 핵심단어는 ‘지적 전투력’이라는 군사용어다. 사실 나는 책이나 기사에서 이러한 군사적 용어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삶은 격전지이고, 그러한 격전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승리해야 한다는 경쟁적 언어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경영의 컨설턴트이고 주된 독자들이 기업 관련자들이니 그러한 표현이 익숙할 것이다. (넘어가기로 한다.)

내가 관심을 두는 부분은 ‘독학의 기술’ 부분이다. 사실 중년 이후의 대부분의 배움은 독학이다. 성인이 된 사람들은 대개가 독학을 중심으로 나머지를 보완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독학의 효용성은 천차만별이다. 저자 역시 철학(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저자가 활동하고 있는 부분은 경제경영 컨설턴트이니 실제로 활동하는 분야는 독학으로 해결한 셈이다. 지은이는 그런 점에서 크로스오버에 능통한 지식인이다. 지은이는 독학이 필요한 이유를 4가지로 설명한다.(도표 참조) 크로스오버는 여기서 4번째에 해당한다.


학문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크로스오버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 요청되는 상황은 매번 크로스오버를 해야 한다. 자신의 전공대로만 사는 사람이 과연 몇 프로나 될까?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과거에는 하나의 분야에 능통한 전문지식인이 필요했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은 아울러 잘할 수 있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이 필요하다는 논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미래 전망에 따르면 한 사람이 전공과 관련 없는 직업을 10차례 이상 바꿀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온다고 하니, 독학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학문을 하는 이유은 유연한 지성을 갖기 위해서이고, 이러한 지성의 갖추는 이유는 너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유연한 지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확인하는 것을 통해서는 가질 수 없고, 미지의 세상의 대한 열린 사고와 자세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아울러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보완하는 방식도 있지만,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과 협업(콜라보)해야만 가능해지는 일이 많아지는데, 이 역시 유연하고 열린 태로를 가진 사람이 더욱 유리하다. 그러니까 독학의 기술은 스스로 섬을 만드는 ‘독고다이’가 되자는 말이 아니라, 더 유연하고 넓게 차이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기술이 될 터이다.


저자는 지적 생산을 최대화하는 독학의 메커니즘으로 4개의 모듈을 제시한다. ① 한정된 시간에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무기를 모으는 ‘전략’을 세우고, ② 쓰레기를 삼키지 않으면서 단기간에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인풋’으로 영역을 넓히고, ③ 이렇게 마련한 지식을 자유자재로 다를 수 있는 ‘추상화와 구조화’의 과정을 거쳐, ④ 창조성을 높일 수 있는 지적 생산 시스템을 '축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사례와 방법은 1장부터 4장에 걸쳐 자세히 소개되고 있으나, 전체를 소개할 수는 없고 나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부분만 이야기하자면, 나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활용해왔던 것인데, 독서나 실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구체적 지식들을, 보다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공리’로 정리하여 다른 영역에 적용해보는 ‘추상화와 구조화’는 일반적인 독서인들이나 생활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에디슨까지 세계적인 천재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한 부분은 자신의 전문영역이 아니라 독학을 통해서 깨달은 것인데, 이러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고 중에 하나가 바로 ‘추상화와 구조화’이다.

생각해보니, 구조주의자인 레비스트로스도 원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관찰하고, 이를 추상화하고 구조화하여 ‘구조주의적 인류학’이라는 인류학을 만들고, 이러한 ‘공리’에 입각해 현대사회를 비판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제시한 독학의 기술은 바로 새로운 이론이나 학문을 정립하는 기술에 다름 아니다.

마지막 5장에서 제시하는 교양이 될만한 책들을 12개의 영역에 걸쳐 10권씩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도 반 정도는 되지만, 평심한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저자의 독서경험을 반영한 것이라 그리 신뢰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나는 심리학 분야에 몇 권을 찍어서 주문했는데, 이는 이론 심리학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현상을 심리적으로 풀어본 책들이라 효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많은 독서를 해도, 수없이 많은 수업과 강좌를 들어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저자의 책은 왜 자신이 효과를 보지 못했는지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지금보다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있는 ‘무기’를 장착하고 싶은 사람도 이 책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추신> 아마도 아마구치 슈의 저술은 나의 독서목록에 자주 오를 것 같은데, 이는 그와 나의 출발점(인문학)이 같지만, 그와 나의 글쓰기가 너무도 달라, 이종교배를 위해서라도 그의 글쓰기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글쓰기의 내용만큼이나 글쓰기의 형식, 책을 구성하고 이를 채워나가는 논리와 사례를 드는 방식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러한 글쓰기 형식은 아마도 실용성을 강조하는 일본 서적계의 특징이기도 할 터인데, 내가 이전까지 썼던 책들은 이러한 실용성에서 많이 떨어진 것이라, 밴치마킹을 할 필요가 있다. 나도 책을 써서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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