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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28. 2020

2020 독서노트 69 : 읽기의 말들

박총, 《읽기의 말들》(유유, 2017)

모든 창조적인 독법은 과연 오독의 산물이다. 그런 독법의 구사자는 책을 읽어 내려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책을 써 내려간다. 여행자가 자신이 밟는 땅을 창조하듯이 독서가는 자신이 읽는 책을 창조한다. H. V. 밀러는 “독서는 얼른 보기에는 창조와는 비슷하지 않은 것같이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어떤 깊은 의미에서 비슷한 것이다”라고 했다. 알랭 드 보통도 “모든 독자는 자기가 읽은 책의 저자다”라고 회답한다.(95쪽)


독서가들은 책보다 안전한 쾌락이 없고, 서재보다 안전한 장소가 없다고 노래한다. 재밌게도 독서라는 그 안전한 쾌락이, 서재라는 그 안전한 장소가 지배체제를 위협하고 전복한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도 가장 위험한 쾌락이라니, 역설적이지 않은가. 안전의 태반이 위험을 잉태한다는 사실이, 알고 보면 이는 역설이 아니라 순리다. 가장 안전한 사랑 속에 충분히 머물렀던 이가 가장 큰 위험을 감내하는 용기를 감행한다. 실제로 목숨을 내주는 사랑을 받았던 이는 제 목숨을 내주는 선순환을 만든다.(141쪽)

    

저자의 이름이 박총이다. 낯설다. 표 2에 나와 있는 저자 소개를 살펴본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난다는 박총은 작가이자 목사다. 인생이 비루하나 꽃과 책이 있어 최악은 면했다는 그는, 어쩌다 공돈이 생기면 꽃을 살까 책을 살까 망설이는 순간을 사랑한다. 서른 해를 길벗한 안해(아내) 및 네 아이와 더불어 수유리 삼각산 자락에서 다복하게 산다.(……) 곡진한 언어로 사랑과 일상의 영성을 노래한 『밀월일기』, 신학과 인문학을 버무려 대중신학의 지평을 연 『욕쟁이 예수』, 빛나는 아포리즘과 웅숭깊은 묵상을 담아낸 『내 삶을 바꾼 한 구절』로 적잖은 반향을 얻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주교의 어린이 성서 『하나님의 아이들』, 엘리자베스 A.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등 여러 권의 역서와 공저를 내기도 했다.”


정감이 간다. 책을 읽고 쓰는 목사라니. 네가 알기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책을 안 읽는 직업이 교사와 목사다. 설교나 수업과 연관된 책이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목사와 교사를 나는 많이 보았다. (물론 이는 지독한 편견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박총은 다르다. 책을 읽어갈수록 그의 독서량과 질에 감탄한다. 이 정도면 책읽기에 프로라 할만하다. 게다가 멋진 인용구를 해석하는 더 멋진 해설문을 읽으면서, 참 글을 맛깔나게 쓰는구나 감탄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한 주제와 연관된 인용구를 달고, 그를 해설하는 글쓰기는 가장 편하고 쉬운 글쓰기이다. 한편 이 편하고 쉽다는 것이 바로 함정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주는 긴장감도 없고, 글도 평면적 나열이라 자칫하면 진부하고 지루한 글쓰기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런 글쓰기는 웬만한 작가들은 잘 선택하지 않는 글쓰기에 해당한다. 성공의 확률이 아주 낮기 때문이다.


박총이 쓴 《읽기의 말들》(유유, 2017) 그 희박한 성공을 거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용구만큼이나 유익하고 알찬 읽을거리로 풍성한 글잔치를 베풀어주었다. 이런 책은 대박이 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읽은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권장할 수 있는 품질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꼭 한 번 구입하여 읽어보라. 내가 쓴 글이 먹혀 이 책이 팔린다면, 박총 목사가 꽃 몇 송이, 책 몇 권쯤을 구입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좋은 책은 입소문으로 팔리는 책이다.      


<추신> 책 뒤에 ‘고마움의 말들’을 보면서 한참 웃었다. “한국출판사상 가장 긴 ‘땡큐 리스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리스트에 속해 있는 사람들만 한 권씩 구입해도 초판 정도는 다 팔릴 정도로 많은 사람의 이름을 사랑을 담아 기록하고 있다. 나도 한 번 써먹어봐,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일단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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