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개요는 어느 수준에서 짜는지가 문제다. 영화 시나리오를 예로 들어보면 이렇다. 시나리오는 몇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데, 처음에는 매우 단편적인 생각밖에 없다. 어떤 주제나 인상적인 장면 하나에서 출발한다. 이것을 한두 문장으로 구체화한다. ‘로그 라인log line’, ‘테마’라고 한다. 풀이하면 ‘무엇에 관한 이야기’ 정도다. 이를 좀 더 구체화한 게 ‘시퀀스sequence’다. 이야기 전개 과정을 서술해보는 것이다. ‘만난다-사랑한다-헤어진다-다시 만난다-함께 죽는다’ 하는 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A4용지 한 장 이내로 이야기의 개괄을 작성한 게 ‘시놉시스synopsis’다. 시놉시스를 A4용지 15~20장 분량으로 늘리면 ‘트리트먼트treatment’가 된다. 이를 기반으로 마침내 시나리오를 쓴다.(288쪽)
강원국의 《나는 말하듯이 쓴다》(위즈덤하우스, 2020)을 읽었다. 첫인상은 “참 수다꾼이구나”였다. 두 번째 느낌이 “아예 모든 것을 쏟아부었구나”였다. 강원국의 말마따나 “책에 담긴 글쓰기 방법은 스무 개가 넘는다. 모두 내가 경험한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자기에게 맞는 것을 고르거나 두세 개를 합해 활용하면 된다. 더는 다른 방법을 찾아낼 자신이 없다. 찾을 수 있는 모든 걸 담았다고 자신한다. 이 책을 읽고도 글쓰기가 두렵다면 어찌해줄 방법이 없다.” 이 말에 동의한다. 남김없이 다 쏟아부었다. 나 같으면 이 정도의 내용이면 4~5권으로 나눠서 썼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말하기와 글쓰기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의 경쟁상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꼼꼼히 주의 깊게 읽었다. 목차는 알찼고, 내용은 훌륭했다. 게다가 적절하게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어 글 읽는 맛도 살아있었다. 술술 거침없이 읽혔다. 게다가 남김없이 검토하고 빠짐없이 서술하였고, 그 서술 방법으로 가장 안전한 ‘첫째, 둘째, 셋째’의 병렬식 글쓰기를 진행하였다. 1만 6천 원의 가격대에 과분한 양이 분명했다.
솔직함과 진술함은 그의 글쓰기 전략임에 분명하다. 강원국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장점을 빼지 않았다. 글쓰기 책 10권을 써서 100만 부를 팔겠다는 그의 소망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지막 꼭지에 아내의 입을 빌어 ‘10만 부 각’이라고 자찬하는 것을 보면서도 밉지 않았다.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안도하였다. 그의 책은 내가 쓰는 책과 성향과 성격이 달라, 주제는 겹치지만 방식은 달랐다. 그는 남김없이 자세히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나는 핵심만 간략하고 인펙트있게 글을 쓰고 싶었다. 나중에 다 써서 출간되면 비교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노는 물은 다르다는 판단이다. 내가 쫄 필요는 없었다.
강원국의 이 책은 30대 직장인 여성을 주타깃으로 삼아 글을 쓴다고 말했다. 과거에 자신과 함께 일했던 30대 여성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고도 고백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독자를 상정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직장인에게 적용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한편 이 책은 강원국이 SNS에 기록해둔 2000개가 넘는 메모의 결정판이다. 읽을거리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말하고 글쓰기의 뷔페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의 끝없이 글발에 현혹되었다가, 조금은 나른해졌다. 영화로 비유해보자면 〈트랜스포머 3〉를 본 기분이랄까? 너무도 현란하여 그 속도감을 따라잡지 못하고 결국은 자버렸던 두 번째 영화. 물론 이건 간명하고 압축적인 글을 좋아하는 나의 독서취향이고, 말 잘하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구입하여 두고두고 밑줄 쳐가며 참고할만한 내용이 너무도 많다. 강원국은 훌륭했고, 나와는 달랐다.
<추신 1> 일찌감치 강원국이 쓴 《대통령의 글쓰기》와 《강원국의 글쓰기》는 구입해 두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며 읽지 못했다. 목차를 보니 겹치는 소재도 있지만, 강원국의 진화를 관찰하기 위하여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때로 현재의 책이 과거의 책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 또한 좋은 현상이다.
<추신 2> 위에 인용한 부분은 시나리오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한 것인데, 강원국의 요약 실력도 대단하지만, 나 나름대로는 뭔가 큰 깨달음을 주는 문장이라 인용해놓는다.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아직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