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Jul 07. 2020

2020 독서노트 72 : 삶과 만나는 주역 이야기

김주란 등 8명,  《내 인생의 주역》(북드라망, 2020)

"『주역』에서는 자신의 기질(음 또는 양)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떤 자리(位)에 있는가, 그리고 자신과 호흡을 맞추는 자가 어떤 기질을 가진 자인가(應),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자는 어떤 기질을 가진 자이며 그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比) 하는 것이 사건 전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금 겪고 있는 이 사건은 우리가 거기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관계와 배치가 달라지면서 또 다른 사건으로 전환된다. 이런 이치를 알게 된다면, 내가 했다고 잘난 척하거나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며, 사건을 흘려보내지 못한 채 상처로 부둥켜안고 원망과 자책으로 생명에너지를 소모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을 것이다.”(31쪽)  

공자가 읽다가 세 번이나 가죽끈을 끊었다고 말한 책이 《주역》이다. 공자가 그토록 오랫동안 반복해서 읽었다면 책이 어려웠거나 심오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일찍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읽고 이해하겠노라 다짐하고 도전하였지만, 끝내 그 오의(奧義)를 파악하지 못한 책이 바로 《주역》이다. 주역에 대한 도전기는 2천 년 이전으로 거슬러간다. 어쩌다 감옥체험을 했던 나로서는 남는 것이 시간이라, 평소라면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사입하여 독서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주역》을 접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그때 읽었던 책이 1995년도에 일신서적에서 출간된 《원본주역》이었다. 처음 접했을 때 정말 왜 이런 책을 경전화했지 의문시했었다. 정말로 요지경과 같았다.

그 이후로 감옥에서 나와 이러저러한 주역책을 꽤나 모으며 독서를 하였다. 개론서, 원전해설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주역 관련 책들이 내 수집 목록에 있었다. 심지어 나는 주워듣고 정리한 지식으로 몇몇 학생을 상대로 주역읽기 강의도 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명료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희미해져만 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나는 주역을 고전으로만 생각하여 그 속에 숨겨있는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했었다. 공자님이 남겼다는 주역해설인 십익(十翼)을 읽어 주역에 날개를 달아 날아도 그 깊고 오묘한 세계는 멀리 달아나기만 했다. 세월이 흘러 모든 책이 시큰둥해질 무렵, 주역 역시 하나의 책의 불과하고, 나의 삶에 깊은 연관이 없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며 손에서 멀찌감치 떨어트려 놓았다. 주역은 나에게 ‘신 포도’였다.

그동안 내가 읽은 주역 관련 책들은 모두 주역에 능통하다는 전문가들의 책이었다. 주역을 통해 주역을 배우지 못하고 중국고사와 역사에 대한 상식만 풍부해지는 부작용(?)도 있었다. 지식은 늘었지만 지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적어도 주역은 나에게 딴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던 차, 고미숙 선생의 그룹에서 주역을 공부한다고 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공부할지 궁금해졌다. 고미숙 선생의 성격으로 미루어보건대, 분명 고전만 들입다 파는 학습은 아닐 것이고, 분명 학생들의 삶에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했을 텐데 그 실체는 어떻게 나타날까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 내손에는 ‘삶과 만나는 『주역』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내 인생의 주역》(북드라망, 2020)이 쥐어져 있다. 고전 전공자나 주역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학생들(?) 8명이 8개씩 64괘(卦)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의 글모음이다. 64개의 개별 글이 펼쳐지기 전에 책 앞에  기본학습으로 주역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주역의 구성과 기본용어를 수록하여 주역에 일반적인 이해를 높여 놓았지만, 그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 책을 공부한 학생들의 태도였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주역에 매료되었을까?  

   

“우린 동양 고전 전공자도 아니고, 일생을 『주역』에 바친 재야 학자도 아니다. 단지 『주역』의 이치는 쉽고 간단하다는 공자님의 말씀을 믿고 무작정 외우고 쓰면서 가까워졌고, 이치를 파악하면 저절로 활용하게 된다는 말씀을 믿고 활용해 보았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누구는 64괘 384효라는 촘촘한 『주역』의 매트릭스를 통과하는 순간 자신처럼 거친 감각을 가진 사람도 사건을 클로즈업하게 되는 마술이 펼쳐졌다 하고, 누구는 낯선 용어와 고대사회의 껍질을 관통해 들어가니 뜻밖에도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고민과 일상을 만나게 되어 놀랐다 하고, 또 누구는 그 어떤 고전보다 뜻이 깊으면서도 일상의 디테일한 국면까지 파고드는 생활밀착형 텍스트라며 극찬을 했다. 부디 독자들께서도 이 책을 통해 『주역』이 특별한 몇몇 지식인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난해한 책이라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신비가들의 세계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삼삼오오 모여 『주역』을 읽고 즐기고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 6쪽 <서문> 중에서     


이들은 주역을 외고, 자신의 생활에 밀착하여 주역을 풀이하고, 주역이 주는 말을 자신에게 던져진 말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이들이 주역을 이해하는 정도나 정확한 해석 따위는 처음부터 기대 밖으로 내놓았기에, 나는 이들이 어떻게 주역을 자신의 삶으로 녹여내는지만이 궁금했다. 이들의 풀이는 전문가의 해설과는 사뭇 달랐고,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쾌사와 효사를 해석하며 삶의 원동력으로, 에너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주역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주역을 바라보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고, 내가 왜 진작에 이런 시선과 태도로 주역을 보지 못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솟아나기도 했다. 나는 지금 이 책을 곶감 빼먹듯이 정주행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나는 용기를 내서 낡은 책장에 꽂혀 있는 주역을 다시 읽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식 자랑이 아니라 주역을 읽는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이 든다. 이 책은 주역을 읽을 수 있는 용기를 다시 불러내는 책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추신> 최근 풍문으로는 고미숙 선생도 주역을 공부하여 그에 대한 책을 쓴다고 하니 조만간에 고미숙 선생이 쓴 주역 책을 만나길 학수고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 독서노트 70 : 조지 오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