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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l 19. 2020

2020 독서노트 74 : 융 심리학 읽기

신근영,《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북드라망)

시공간을 초월한 만병통치식의 치료란 없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는 하나의 과정이고, 그렇기에 새롭게 얻은 자아의 모습은 일시적인 적응일 뿐이다.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면 자아는 또다시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치료를 통해 얻은 새로운 자아의 모습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된다. 그것들 고집할 경우 또다시 병은 찾아온다. 지금의 치료는 지금에 적합할 뿐이다. 긴 안목으로 보아서 유효한 치료란 없다. “삶은 언제나 다시금 새롭게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다.”(196쪽)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고미숙 학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글은 쉽고 재밌다. 그들의 모토는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이다. 그들은 주로 <남산강학원>에서 고전을 공부하고 있으며,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책을 쓴다.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북드라망, 2012)을 쓴 신근영도 마찬가지이다. 수학과 윤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정신분석학자인 융에 대한 저술을 개론하고 있다. 융 심리학의 입문서다.

8년 전에 쓴 책을 이제야 읽는다. 융에 대한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시절의 영향인 듯하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이 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이 신경증이거나 정신분열증적이다. 일상적 삶의 기반이 무너지니 괜스레 화가 나기도 하고 도대체 앞이 안 보여 대략 난감이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는 종교나 심리학 책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심리학을 선택할 때, 프로이트보다는 융을 선택한다. 무의식 탐구 영역의 선구자는 프로이트지만, 더 깊은 차원으로 탐구한 사람이 융이기 때문이다. 융의 심리학적 개념들은 심리학적 글쓰기에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콤플랙스, 빛과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아와 자기, 융합과 합일, 원형과 집단무의식, 개성화 등 융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개념들은 인문학 공부의 영역까지 넉넉히 확장되는 유용한 도구들이다. 게다가 의사와 병자라는 이분법을 넘어,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 내려와 환자와 함께 자신을 새롭게 탐구하는 융의 정신분석 방법은 의학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구도적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섣부른 진단과 처방이 아니라, 다방면의 징후들을 복합적으로 읽어내면서 새롭게 자신을 구성할 수 있는 집단적 구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융의 심리학 전체에 대하여 개괄할 수 있게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심리현상에 대해 꽤 설득력 있는 접근법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왜 우리는 남들을 미워할까? 가짜뉴스와 집단적 광기가 판을 치는 이유는 뭘까? 잘 나가던 사회 지도자들이 왜 갑자기 어처구니없는 일들에 휘말릴까? 왜 우리는 미치도록 사랑하다가 죽일 것 같이 미워할까? 서로 사랑해야 할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가 비극의 주체가 되는 이유는 뭘까? 등등. 책을 읽어가면서 고개를 자주 끄덕이게 만들었던 책이다.   

   

<추신> 그 복잡하다는 융의 생애와 저술을 날씬하게 말끔하게 정리하는 신근영의 글솜씨에 매료되어 저자인 신근영의 다른 작품을 살펴보니 2017년에 《사람은 왜 아플까-생명》(낮은산)이 있다. 구매목록으로 찜해둔다. 병을 제대로 앓고 있지 않고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병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앓는 것이 ‘건강’일지로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과 꽤 많이 공명하는 책인 듯하다. 인터넷에 소개된 인용구 하나를 옮긴다.     


“삶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서 병과 삶으로서 죽음. 이러한 사유를 가졌던 과거 공동체들은 ‘병에 걸렸다’ 대신에 ‘아프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아프다는 것을 먹다, 자다, 사랑하다, 싸우다와 마찬가지로 삶의 한 양태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치유 역시 삶의 맥락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단순히 병을 몰아내는 치료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아픔이라는 삶 그 자체를 살아가는 삶의 능력을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사랑하는 법을 익혀나가듯, 잘 아플 수 있는 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죠.” (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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