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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l 21. 2020

2020 독서노트 75 : 김종철과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의 유작,《녹색평론》173호

최근에 세계적인 지적 총아로 등극한 유발 하라리, 이 젊은이는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지만, 마치 세계의 미래에 관해서는 자기가 자장 잘 안다는 듯이 ‘예언자’ 행세를 거침없이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지배할 세계에 대한 경고를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라고, 간혹 선의로 해석하는 논자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유발 하라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그 어두운 예언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점을 가장 용서할 수 없지만, 실은 이것은 소위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하다.(160쪽)    

 

2020년 6월 25일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74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선생을 아는 지인들은 이 황망한 죽음 앞에 한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슬픔을 느꼈다. 21세기에 한국에서 얼마 남지 않은 대쪽 같았던 사상가 한 분이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김종철 선생을 멀찌감치에서 존경하고, 그가 발행하는 잡지의 소심한 애독자로 살아갔을 뿐이다. 

한 번은 선생님을 내가 활동하는 인문학 모임에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는데, 선생은 그 모임의 부르주아적(?) 냄새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내내 불평만 늘어놓으시고 가셨다. 선생을 강추한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선생은 가시고, 뒤풀이 시간에 회원들로부터 또 다른 불평들을 들어야 했으나, 김종철 선생에 대한 원망은 없고, 속으로 역시 김종철 선생이시구먼 생각했다. 그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자신의 주장을 올곧게 펴시는 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기구독하는 시사주간지 <시사IN>(669호)에는 김종철 선생 사망 후 장정일의 글이 실려있다. 그 글에서 장정일은 선생을 이렇게 기록한다. : 생전의 마지막 저서가 되어버린 생태사상론집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녹색평론사, 2019)에서 선생은 “시인은 근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매사에 불만을 쏟아내는 ‘프로 불편러’도 모두 시인일까. 김수영만 하더라도 붙잡혀간 소설가나 베트남전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고작 설렁탕에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설렁탕집 주인더러 “돼지 같다”고 분개하는 자신을 “옹졸한 위인”이라고 자학했다. 선생이 시인의 모범으로 삼은 이의 제기자는 이반 일리치다. “일리치 같은 사상가는 기본적으로 시인입니다. 사물의 근본을 생각해보자는 것이죠.” 말하자면 〈녹색평론〉을 통해 제기했던 기본소득, 추첨 민주제, 지역화폐, 소농(小農) 사회 등은 모두 오늘의 문명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이의였으니, 선생은 소년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김종철 선생은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민중의 삶을 탐구했던 거의 유일한 어른이셨다. 이번에 출간된 《녹색평론》 (173호)는 선생이 남긴 마지막 유작과 같은 책이다. 거기에는 선생의 마지막 원고라 할 수 있는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이 실려 있었다. 나는 유지를 받들 듯이 선생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글을 읽으며, 앞으로 이렇게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학필이’ 근성에서 벗어나 민중의 입장에 서려는 사상가가 대한민국에 또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왔다. 

선생은 지식인됨에 대하여 생애 내내 철저히 자아성찰을 하셨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지식인들의 지식질에 대하여 염려하고 걱정하셨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을 높이 평가하였고, 민중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민중의 사상을 소개하고, 평생 민중 곁에 서려고 하셨다. (이렇게 높임체로 서술하는 것을 용서하시라. 이 글은 어쨌든 선생의 추모글이기도 하니까.)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시사in>에 그려진 김종철 선생. 그의 생태사상에 어울리는 멋진 삽화다.


<추신> 김종철 선생 없는 《녹색평론》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선생의 뜻을 이어 《녹색평론》이 계속 발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 173호뿐만 아니라 어떤 호든지 《녹색평론》이 아니면 수록될 수 없는 귀중한 원고들이 있다. 이러한 원고들은 사장되어서는 안 된다. 정기구독이든, 구매든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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