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1 : 바리스타 장자

막힘 없이 살려고 노력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by 김경윤

막힘 없이 살려고 노력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고요하니 끝도 없이 아무런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지고 무엇이 되어 갑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죽음인가요? 삶인가요? 천지자연과 함께 하는 것인가요? 밝은 마음이 오는 것인가요? 모든 걸 버리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요? 홀연히 어디로 떠나는 것인가요? 분명 모든 것이 펼쳐져 있지만 딱히 돌아가야 할 곳도 없습니다. ‘어디로 가나’, ‘어떻게 하나’,

옛날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이런 면이 있었습니다. 나 장주는 이러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이야기, 황당한 말, 밑도 끝도 없는 말들을 이따금 제멋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편견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세상이 혼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른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시비를 떠나 자연의 조화를 따르는 치언(巵言)으로 끝없이 바꾸고 달리 말해보았습니다. 옛 어른의 말을 인용하는 중언(重言)으로 진실을 말했습니다. 빗대는 말인 우언(寓言)으로 폭넓게 말했습니다. 천지자연의 순수한 마음으로 오고 갔을 뿐입니다. 어떤 것도 오만하게 흘겨보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세속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 책은 이상하고 독특하기도 하지만 둥글게 흘러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도 들쭉날쭉 장난스럽기는 합니다만 볼 만합니다. 그 내용이 진실로 가득 차 있으면서 끝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모든 것을 만드는 조물자와 함께 노닙니다. 아래로는 죽고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끝도 시작도 모르는 것들과 벗을 삼았습니다. 뿌리는 넓고 크게 열어 거침없이 깊이 뻗어나갔습니다. 조상과는 조화를 이루며 높은 곳까지 다가갔습니다. 되어가는 것에 응답하고 무언가를 풀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다하지 못했습니다. 다가오는 것을 벗어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득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하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천하> 14, 15


장자(莊子)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는 생몰연대도 정확하지 않다. 장자에 대한 널리 인용되는 전기자료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이다. 제목에 이름조차 없는 것을 보면 사마천은 장자를 중요한 인물로 여기지 않은 듯하다. 전반부를 읽어보자.


장자(莊子)는 몽(蒙) 지방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그는 일찍이 송나라의 몽 지방의 칠원(漆園)이라는 곳에서 벼슬아치 노릇을 했고 양혜왕(梁惠王), 제선왕(齊宣王)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는 학문이 넓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 학문의 요체는 노자의 말에서 시작하여 노자의 학설로 돌아간다. 십여 만 자에 이르는 그의 책은 대부분이 우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어부(漁夫)>, <도척(盜拓)>, <거협(胠篋)> 편을 지어서 공자 무리를 비판하고 노자의 가르침을 밝혔다. 외루허(畏累虛), 항상자(亢桑子)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 꾸며 낸 이야기이다. 장자는 빼어난 문장으로 세상일과 인간의 마음을 살피고 이에 어울리는 비유를 들어 유가와 묵가를 공격했다. 당대의 학문이 무르익은 위대한 학자들도 장주의 공격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의 말은 거센 물결처럼 거침이 없으므로 왕공(王公)이나 대인(大人)들에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사마천의 평가에 따르면, 한 마디로 장자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쎈 인물이었다. 당대의 위대한 학자들도 그 앞에서는 픽픽 쓰러졌다. 만약에 장자가 검을 휘두르는 자였다면 동방불패, 천하무적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미움을 샀다. 같이 놀기에는 너무도 강력하여 왕따 당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천하>에 소개된 장자는 다르다. 성격적으로는 소심한 편이다. 한편으로는 자존감이 넘쳤지만, 남들 앞에서 자신을 뻐기지 않았다. 오히려 장자는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었고, 평생 그 질문에 답을 찾아 돌아다닌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이 쓴 책을 ‘볼 만하다’고 겸손히 소개한다. 가장 높은 곳까지 상상하고, 가장 낮은 곳에 임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살았지만, 결국 ‘아득하고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끝까지 추궁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생각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겸손히 붓을 내려놓는다.

나는 무협지의 천하무적 같은 장자보다, 우물쭈물하고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피식 웃을 것만 같은 장자를 사랑한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저도 잘 몰러유’라고 말할 것만 같은 장자가 더욱 좋다. 쓸모없이 살아가고 [無用之用], 쓸 데 없이 모르는 [無知之知] 장자랑 함께라면 평생지우(平生之友)의 맹약이라도 맺고 싶다. 장자의 질문을 나의 질문으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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