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2 : 카르페 디엠

신맛-1. 고귀한 죽음보다 초라한 삶을 택하겠습니다.

by 김경윤

고귀한 죽음보다 초라한 삶을 택하겠습니다


장자가 복수 근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나라 임금이 대부 두 사람을 그에게 보내어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습니다.

“번거롭겠지만 나라의 정치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풍문에 따르면, 초나라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이미 삼천 년이나 되었다지요. 임금께선 그것을 비단으로 싸서 상자에 넣어 묘당 위에 보관한다던데. 그 거북의 입장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습니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습니까?”

두 대부는 대답하길,

“그야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려 하겠지요.”

장자도 조용히 말했습니다.

“알아 들었으면 돌아가세요. 나는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며 살려합니다.”

<추수> 13


장자와 동시대인이었던 맹자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일찍이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초개처럼 버릴 줄 아는 대장부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 그가 아니던가. 맹자는 이런 말도 했다. “목숨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義)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 둘을 같이 지닐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義)를 선택할 것이다.” ‘사생취의(捨生取義)’가 여기서 나왔다. 맹자가 흠모해 마지않던 공자도 이런 말을 했다.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서 인(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인(仁)을 행할 뿐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는 고사의 출전이다.


지식인에게 명예와 명분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이 신봉하는 이념이나 사상에 목숨을 건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에게는 삶이 아니라 사상이 먼저다. 일단 마련한 사상적 렌즈로 세상을 해석하고 재단한다.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게 된다. 보는 것이 다르니 사상투쟁이 형성된다. 사상이 다르면 죽음마저 불사(不辭)한다. 죽음을 불사하는 자는 죽임도 불사한다.


장자의 시대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 한다. 이른바 전쟁을 밥 먹듯이 했던 시대다. 전쟁의 시대에 목숨을 쉽게 잃는 계층은 지배층이 아니다. 전쟁통에 끌려다니던 민중들이다. 민중은 사상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까닭 없이 끌려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잃는다. 어디 전국시대뿐이랴. 어느 시대든 목숨이 가장 위태로운 것은 가난하고 약한 민중들이다. 그저 살기를 바랐던 여린 목숨이 파리처럼 죽어간다. 지식인이 숭앙해 맞지 않는 고귀한 죽음은 드물었고, 민중의 떼죽음은 다반사였다. 이것이 역사의 실체이다.


장자는 지식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는 목숨을 대변한다. 사는 것이 먼저다. 살고 싶고, 살아내고,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무엇보다 숭고하다. 장자에게 사상이란 게 있다면 ‘잘 살다가 잘 죽는 것’이다. 사상이나 명분이나 명예나 지위 따위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그는 진흙의 삶을 디폴트 값으로 설정하였다. 삶은 가난했지만 가벼워졌다. 사상의 질곡(桎梏, 차꼬와 수갑)을 풀고 훨훨 날 수 있었다.


그러니 무엇을 위해서 살지 말자. 삶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누리는 것이다. 지배자와 지식인들이 덮씌운 더께를 지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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