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7 : 리얼 장자
신맛 6 - 치질을 햝아 주었소?
치질을 핥아 주었소?
송나라 사람 중에 조상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송나라 사신으로 진나라에 갔습니다. 갈 때에는 수레 몇 대를 얻어 타고 갔으나, 돌아올 때에는 진나라 왕의 환대를 받고 수레 백 대를 선물로 받아 송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장자를 만나 말했습니다.
“당신처럼 지저분한 뒷골목의 궁색한 집에 살면서, 짚신이나 삼아 신고, 깡마른 목에 누런 얼굴을 하고 지내는 것은 저로서는 잘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단번에 만승의 군주를 깨우치고 백 대의 수레가 뒤따르게 하는 일은 제가 잘하는 일이지요.”
장자가 말했습니다.
“진나라 왕은 병이 나서 의원을 불렀을 때 종기를 째서 고름을 빼 준 자에게는 수레 한 대를, 치질을 핥아준 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준답디다. 치료 부위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수레를 더 많이 둔다던데, 그대는 도대체 어디를 핥아준 겁니까? 왕의 치질이라도 핥아 고쳐주기라도 했소? 어찌 그토록 많은 수레를 받았단 말이오. 당장 꺼지시오.”
- <열어구> 8
《장자》 전체에서 나는 이 구절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 타인의 입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장자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한 대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일단 장자의 사는 곳에 대한 묘사 : 지저분한 뒷골목의 궁색한 집! 요즘 상황으로 표현하면 빈민촌의 싸구려 월세 집 정도에 해당하려나. 다음으로는 장자의 일상사와 용모 : 짚신이나 삼아 심고 깡마른 목에 누런 얼굴[槁項黃馘]. 요즘 상황이라면 변변한 직업 없이 가내 수공업을 하면서, 굶주려 깡마르고 얼굴이 누렇게 뜬 상태. 의학적으로는 황달로 진단할 수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간경변. 담석증, 간암 등으로 황달이 나타날 수 있다고 쓰여있다. 술을 많이 마셨든지 피로가 쌓였든지 간이 안 좋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정도 정보만 가지고도 장자가 극빈층에 해당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빈한한 장자였지만 송나라에서는 나름 명성이 있었나보다. 극진한 환대를 받고 돌아온 사신 조상이라는 자가 장자를 찾아와서, 장자를 조롱하며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고 있는 것 보면 말이다. 보나마나 화려한 옷을 입고 멋진 수레를 끌고 찾아왔을 것이다. 장자도 이 모습이 꼴 사나왔던지, 더 심한 조롱으로 조상이란 자를 한 방 먹인다.
“진나라 왕은 더러운 곳을 치료하고 빨아주는 자에게 수레를 선물하는데, 그 부위가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더 많은 수레를 준다지. 도대체 너는 왕의 어디를 그렇게 빨아줬기에 왕이 수레 열 대나 주냐? 당장 꺼져라, 이놈아!” 역시 장자다. 속이 후련하다. 유쾌, 상쾌, 통쾌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설마 조상이란 자가 진왕의 치질을 핥아주었겠는가? 하지만 외교란 것이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면 줄수록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가지고 오는 법이니, 분명 조상이란 자는 강대국인 진니라에게 유리한 무엇을 약속했을 것이다. 그 약속이 지켜지려면 약소국인 송나라는 더욱 힘들어지게 되니, 그 고통은 모두 민중에게 전가되기 마련. 진왕의 엉덩이를 핥아주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고전 상식 추가>
① 장자의 고국인 송(宋)나라는 주(周)나라에 의해서 멸망한 상(商)나라의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게 된 나라이다. 즉, 망국의 후손이 정착한 곳이니, 다른 제후국에 의해서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맹자》에 나오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의 어리석은 노인이나 《한비자》에 나오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어리석은 사람은 모두 송나라 출신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삼국시대 때 가장 먼저 멸망한 백제와 같은 처지였다고 생각하면 송나라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으려나?
② 당시의 수레는 오늘날에 고급승용차에 해당한다. 춘추시대 공자(孔子)는 평생 수레 한 대를 몰고 다녔다. 수레를 타는 것은 귀족이나 고위관료나 가능했기에 수레를 소유하는 것은 그의 신분을 알 수 있는 표지였다. 십승(十乘), 백승(百乘), 천승(千乘), 만승(萬乘) 등에 나오는 승(乘)이 수레를 세는 단위이며, 만승지국(萬乘之國)이라면 중국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의 나라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