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12 : 해골과 대화

단맛 2 - 부활은 싫소

by 김경윤

부활은 싫소


장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앙상한 해골을 보았는데, 바싹 말라 겨우 형체만 남아 있었습니다. 장자가 말채찍으로 해골을 두드리며 물었습니다.

“그대는 살다 보니 도리 없이 이리되었는가? 나라가 망해 처형을 당해 이리되었는가? 좋지 못한 행실로 부모와 처자에게 치욕을 안겨 자살한 것인가? 춥고 굶주려 죽은 것인가? 늙어 죽은 것인가?”

그리고는 해골을 끌어다 베고 누워 잤습니다.

한밤중에 해골이 꿈에 나타나 장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조금 전에 당신이 한 얘기는 꼭 변사 같구려. 그런데 당신의 얘기를 들어보니 모두 산 사람들의 괴로움입디다. 죽고 나면 그런 걱정은 사라진다오. 어디 죽음에 대해 한 번 들어보시려우?”

장자가 말했습니다. “그럽시다.”

해골이 말했습니다. “죽으면 위로는 왕이 없고, 아래로는 신하가 없소이다. 사철 변화도 없구요. 그냥 천지를 봄가을로 삼으니 비록 왕이라 한들 이보다 즐겁겠소이까?”

장자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아 해골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생명을 관장하는 신에게 부탁해 그대의 몸을 살리고, 뼈와 살과 살갗을 갖추게 하여 부모 처자와 고향 친지들에게 돌아가게 해 준다면 그리하시겠소?”

해골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어찌 왕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고달픈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겠소이까?”

- <지락> 5


죽음은 항상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그리는 서양의 그림 속에는 해골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정물화나 인물화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그림을 '바니타스(vanitas)화'라고 한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전도서>의 한 대목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헛됨' 또는 '덧없음'이란 뜻이다. 영어로는 '베니티(vanity)'! 중세 유럽의 흑사병과 30년 전쟁 등 암울한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아래 그림을 보라. 대표적인 바니타스화다. 깃털펜과 책(인간의 지식)은 멈췄고, 촛불(생명)은 꺼졌고, 유리잔(쾌락, 즐거움)은 뒤집혔다. 가운데 자리 잡은 해골은 죽음의 경고이다.


바니타스.png

인류는 이 죽음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 죽음의 문제를 부활로 해결한 것이 기독교다. 기독교는 부활(復活, resurrection)의 종교다. 신의 아들 예수도 부활했고,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헛된 것이라 말했다. 기독교가 약속하는 천국도 죽은 이들을 부활시켜 사는 곳이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부활까지 포함시키는 강한 부활론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부활보다는 영혼불멸을 믿었다. 인도인들은 환생(還生)을 믿었다. 윤회(輪回) 사상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부처는 환생이나 부활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보았다. 다시 태어나봐야 고생이기 때문이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니체라면 부활을 조롱했을 것이다. 아모르파티(amor fati)의 주창자이니 부활 따위는 상상도 하지 않았으리라.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삶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저주의 말이 아니라, 삶이 끊임없이 반복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며 살라는 의지의 사상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는 외침은 지금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강조이다.


현대인들은 어떨까? 부활이 가능하다면 부활을 원할까? 원하지 않을까? 각자 사정에 따라 다르겠다. 살아봐야 개고생이라면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갑자기 죽은 자라면 다시 태어나길 간절히 바랄 수도 있겠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부활을 바랄까? 잘 모르겠다.


장자는 해골(죽음)과 꿈속에서 인터뷰를 한다. 장자가 해골을 대하는 방식은 장난기가 넘친다. 장자는 해골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말채찍으로 머리를 톡톡 치며 마치 친구인 것처럼 농담조로 이야기를 던진다. 꿈속에 나타난 해골 역시 만만찮다. 이 좋은 세상(죽음)을 놔두고 결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단다. 부활은 거절이란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가 정답다. 장자와 해골의 대화 속에 그리는 죽음의 세계에는 어둠도 공포도 두려움도 없다. 자유롭다. 이야기를 마치고 장자와 해골은 분명 껄껄 웃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부활 따위는 별무소용이었을 것이다. 장자도 알고 해골도 안다. 그냥 농담조로 장난을 친 것이다. 장자, 죽음과도 노는 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자의 맛 11 : 우정과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