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Jul 23. 2020

2020 독서노트 77 : 아픔이란 무엇인가

신근영, 《사람은 왜 아플까》(낮은산, 2017)

우리 각자는 자신의 정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정상이란 없는 것일까요? 프랑스의 의철학자 조르주 캉길렘은 규범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비정상성을 부정합니다. 대신 아주 다른 의미에서 비정상성을 바라봅니다. 비정상적 상태로서 환자란, 한 가지 기준밖에 수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다시 말해, 다른 조건에서 다른 규범을 설정할 수 없으면 환자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비정상이란 규범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반면에 건강한 사람은 지금의 일시적인 규범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규범을 창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가능성의 실현 정도가 곧 건강의 정도가 됩니다. 그렇기에 건강이란 단지 질병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150쪽)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동성애자였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노골적으로 커밍 아웃할 수는 없었는데, 당시 프랑스 사회는 이성애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 성애관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는 푸코의 철학적 탐구는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 탐구와 맞물려 진행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정신과 비정상, 광기의 역사, 정신병원의 역사, 감시와 처벌, 자기의 배려는 푸코가 역사철학적 탐구를 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려는 일생의 노력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신근영은 《사람은 왜 아플까》(낮은산, 2017)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이유를 안쪽 날개의 저자 소개 뒷부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왜 아플까》는 이삼십 대에 몸과 마음이 겪었던 여러 부침의 결과물입니다. 한없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마음과 무기력한 몸 앞에서 ‘아픔’이란 하나의 숙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숙제를 푸는 데 큰 힘이 되어 준 것이 다름 아닌 공부였습니다. 공부가 답을 준 것은 아니지만, 아픔에 대해 다르게 질문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연히 숙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다른 눈으로, 다르게 질문하게 된 아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픔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이를 인류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사유한 결과물이다. 책은 청소년들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로 맞춰져 있으나, 다루는 내용이 얕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병 또는 아픔이라는 것이 단순히 치료되어야 하거나 제거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인간 형성의 기초이고, 생존의 토대이며, 공생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현상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면, 아픔에 대한 새로운 그리고 다양한 안목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병이나 아픔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읽어봄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지, 나에게 다가온 병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건강한 몸인데도 병원에만 다녀오면 비정상으로 판정되어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을 복용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ADHD 판명을 받은 수많은 미국의 청소년들이다. 나중에야 제약회사와 의사들의 공동으로 벌인 사기임이 입증되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경우였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갱년기 현상이라든지 노화현상을 병이라 취급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처방을 하는 것 역시 병이 아닌 것을 병이라는 좁은 – 과학이나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전되는 – 시선에 갇힌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에 논의에 따르면 건강은 아프지 않거나 정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아픔과 정상을 하나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대하는 규범에서 벗어나 변화된 상황에 따른 새로운 규범을 창안할 수 있는 능력이다. 병원에 자주 다니는 것이 건강해지는 지름길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변화된 상황에 맞춰 새롭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세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뒷부분에 소개되고 있는 마사오카 시키와 이반 일리히의 사례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아픔과 더불어 당당하게 삶을 살았던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육척병상에서 꼼짝달싹 없이 누워지내야만 했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병을 관찰하며 기록을 남겼던 마사오카 시키의 감동적인 글 하나를 적바림 해둔다.    

 

“나는 지금까지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소위 깨달음이라는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어떤 경우에도 아무렇지 않게 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잘못이었다. 깨달음이란 어떤 경우에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 있는 일이었다.” (227쪽)          

매거진의 이전글 2020 독서노트 76 : 강신주의 불교 사랑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