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 3 - 돌고, 돌고, 돌아가는 세상
열자가 여행을 하다가 길가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마침 백 년은 묵었을 해골을 발견하고는 쑥대를 뽑아 해골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오직 나와 그대만이 진정한 죽음도 없고, 진정한 삶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구려. 과연 죽어 있는 그대는 슬픈가요? 살아 있는 나는 기쁠까요?
씨에는 생명이 있다지요. 이것이 물속에서는 수초가 되고, 물가에서는 이끼가 되며, 언덕 위에 나면 질경이가 된답니다. 질경이가 거름더미에서는 오족이라는 독초가 되지요. 오족의 뿌리는 굼벵이가 되며, 그 잎새는 나비가 된답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비는 부뚜막에 사는 벌레가 된다는데, 껍질을 벗은 모양이 귀꾸라미지요. 이 귀뚜라미가 천 일이 지나면 간여골이라는 비둘기가 된답니다. 간여골이 뱉은 침이 사미라는 쌀벌레가 되고, 쌀벌레는 식혜라는 모기가 되고, 모기에서 이로라는 벌레가 생긴다지요. 구유라는 벌레에서 황황이라는 벌레가 생기고, 부관이라는 벌레에서는 무예라는 벌레가 생긴다고 합디다.
양해라는 풀은 죽순이 되고, 죽순이 자라 해묵은 대나무가 되면 청녕이라는 벌레를 낳지요. 그 벌레가 표범을 낳고, 표범이 말을 낳고, 말이 사람을 낳기도 한다지요. 그리고 사람은 다시 씨앗으로 돌아간답니다. 이러한 변화를 보면, 모든 것은 씨앗에서 나서 씨앗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 <지락> 7
다시 해골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화자(話者)가 열자(列子)다. 족보를 따져보면 노자가 관윤에게 《도덕경》을 전하고, 관윤은 열자를 가르쳤으니 열자는 장자의 선학(先學)이다. 열자는 기원전 4세기경의 인물로, 이름은 어구(禦寇)다. 《장자》 32편이 <열어구(列禦寇)>편이니, 장자가 그를 선학 대접하고 셈이다.
장자가 열자의 입을 빌어 백년은 묵었을 해골에게 일장연설을 하시는데, 주제는 끝없이 펼쳐지는 생명의 계보학이다. 듣도 보지도 못한 생명체의 이름이 넘쳐난다. 대충 보면 ‘씨앗→식물→ 벌레 → 새 → 표범 → 말 → 사람→씨앗’으로 이어진다. 크게 정리하면 ‘씨앗 → 온갖 생명체들 → 씨앗’으로 순환한다. 살아 있는 열자나 백 년 전에 죽었을 해골이나 이 싸이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낳고, 낳고, 낳거나, 변하고, 변하고, 변한다. 생명의 탄생과 변신은 이처럼 궁궁무진(弓弓無盡)하다. 장자의 낙천적 세계관은 이러한 생명관에서 비롯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생명의 그물망의 한 코이며,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약육강식을 꿈꾸는 약탈적 생명관에서는 먹이사슬을 상상하지만, 공생공존을 꿈꾸는 양생적 생명관에서는 생명그물을 상상한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단 한 생명도 소외되지 않는다. 이 무한가능의 생명관이 장자(와 열자)의 생명관이다. 이러한 생명관은 인디언과도 상통한다. 1853년 피어스 미국 대통령이 시애틀 추장에게 땅을 팔라고 협박(?)했을 때, 시애틀 추장은 편지를 보내 답했다. 그 편지의 일부분이다.
“우리에게는 이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밝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속에 흐르는 수액들은 우리 홍인(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맥,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그들은 모든 존재를 형제자매로 보았다. 그래서 이름도 ‘열 마리 곰’, ‘구르는 천둥’, ‘늑대와 춤을’ 등이다. 장자는 전쟁의 시대인 전국시대에 생명, 평화, 공존, 순환을 꿈꿨다. 이 꿈이 21세기의 우리의 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