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이 《시경》과 《예기》를 들먹이며 남의 무덤을 도굴하고 있습니다. 큰 선비가 무덤 위에서 아래쪽에 대고 말했다.
“동녘이 밝아오네. 일은 어찌 되었을꼬?”
작은 선비가 무덤 속에서 말했습니다.
“속옷은 그대로인데, 입속에 구슬빛이 영롱합니다”
큰선비가 말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짙푸른 보리, 무덤가에 무성하네. 살아서 베풀지 못하던 자, 죽어 어찌 구슬을 머금을꼬“라는 구절이 있잖은가. 그놈의 머리를 잡고 그의 턱수염을 누르시게. 다음에 등뼈로 턱을 톡톡 쳐서 천천히 입을 벌리시고. 구슬을 꺼낼 때는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외물> 4
영화 <킹덤>의 오프닝 한 장면. 시신의 입에 쌀알과 진주를 넣고 간장을 붓고 있다. '반함'이라는 장례절차이다.
유학자들의 도의(道義)를 비판하던 학파는 묵가(墨家), 법가(法家), 도가(道家)가 있는데, 그 중 으뜸은 아마도 도가가 아닐까 싶다. 도가 중에서도 특히 장자학파! 《장자》 외편 중 〈거협〉편에서는 아예 유가를 비판하기로 작정한 듯 유가를 도적 취급한다. 그 중 일부분을 읽어보자.
“허리띠의 고리를 훔친 자는 처형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의 문안에는 인의(仁義)가 존재한다. 그러니 이것은 인의와 성인의 지혜까지 훔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큰 도적의 방법을 따라 제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인의와 되와 말과 저울, 부신과 도장의 편리함을 훔치는 것은 높은 벼슬을 상으로 줘도 막을 수 없는 것이며, 도끼로 위협을 해도 금지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도적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것을 금지시킬 수 없는 것은 바로 성인의 잘못인 것이다.”- <거협>4
유학자가 숭상하는 성인(聖人)도 도적의 수호자다. “세상의 지혜라는 것 중에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아놓는 것이 아닌 것이 있는가? 이른바 성인이란 큰 도적을 위해 지켜주는 사람이 아닌 이가 있는가?”(거협,2) 사태가 이 정도라면 위의 에피소드에 나오는 큰 선비나 작은 선비는 귀엽기조차 하다. 잡히면 시신손괴(屍身損壞)로 인해 가중처벌을 받겠지만, 훔친 것이 고작 입속의 구슬 한 알인 걸 보면, 생계형 도굴범인 것 같기도 하고. 쿵짝이 맞는 걸 보면 형제인 듯도 하다. 지식인인데 어설퍼 등용이 안 되었나? 번번이 낙방을 하면서도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가난한 유생(儒生)들인가 싶기도 하다. 장자는 유생을 희롱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나는 적극 가담하지 못한다.
나 역시 큰 도적은 되지 못하고 가난한 지식인으로 살다 보니 무덤을 도굴하는 두 선비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겼나보다. 나 역시 남의 죽은 지식을 도굴하여 팔아먹고 사는 처지 아니던가. ‘지식의 장발장이여, 잡히지 마라. 어서 구슬을 꺼내 들고 무사 귀가하라!’ 속으로 이렇게 외치게 된다.
<상념(想念)> 대한민국의 고시지옥이다. 2020년 약 5천명 뽑는 공무원 시험에 18만 5천명이 지원했으니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행정직이 경우 223.9대 1의 경쟁률이다.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도 다양한다. 재수, 삼수, 사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른 시험에 비해 기회가 평등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도 가구소득에 비례해 합격한다는 슬픈 소식도 전해진다. 이러나저러나 가난이 원수다. 고시생들의 건투를 빈다. 밥은 먹고 다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