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맛 5 - 강호에서 서로를 잊고 살자
죽고 사는 것은 운명입니다. 밤과 낮이 이어지는 일상은 자연의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의 실정입니다. 만물은 자연을 어버이처럼 여기며 몸소 사랑합니다. 하물며 자연보다 더한 운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임금을 자신보다 귀히 여기며 목숨을 바치기도 합니다. 하물며 임금보다 참된 운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샘이 말라 땅 위에 드러난 물고기들은 서로 물기를 뿜어주고 거품으로 적셔줍니다. 하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보다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요임금을 칭송하고 걸임금을 비난하는 것보다 두 사람을 잊고 운명의 길과 조화를 이루는 것만 못합니다.
대지는 나에게 몸을 싣게 해주고, 삶을 주어 수고롭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합니다. 내 삶이 좋은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내 죽음도 좋은 것입니다.
- <대종사> 5
원래 서문격으로 써보려고 했던 생각의 일단을 여기에 간단히 말해본다. 유학자와 노자, 장자의 패러다임 비교다.
유학자들의 페러다임은 ‘천하(天下)’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사회가 바로 ‘천하’다. 유학의 정신을 압축적으로 정리한 《대학》에서 밝히고 있듯이, 수신(修身)을 하는 이유도 바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이어지는 문명사회 건설에 있다.
노자의 패러다임은 ‘천지(天地)’이다. 문명사회를 훌쩍 뛰어넘는 우주적 도(道)의 세계이다. 가장 거시적 시선에서 인간사를 논하는 것이 노자의 《도덕경》이다. 우주는 특별히 사랑하는 대상이 없다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사상이 바로 노자의 핵심 사상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생사도, 소유도, 승패도 만물의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장자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나는 ‘강호(江湖)’라고 생각한다. 잘나고 높은 것들은 모두 대국의 수도로 모여들지만, 어중이떠중이들은 그저 자신이 사는 곳[江湖]에서 편안하게 살면 된다. 요임금이 옳다느니 걸임금은 폭군이라느니 정치적 평가를 일삼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며 침을 튀기는 동안, 강호인들은 그 모든 견해를 멀리한 채,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삶의 길을 평온하게 살아 간다. 마치 강호에서 서로를 잊고 노니는 물고기처럼!
물을 잃고 물 밖으로 벗어난 물고기에게 물을 적셔주는 것은 물고기에게 선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물고기를 토막 내어 국을 끓이는 것은 물고기에게는 악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물고기에게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인가? 그 물고기를 다시 강이나 호수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물고기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강호니까.
강호의 철학자 장자는 살고 죽은 일은 밤낮이 변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니 호들갑 떨지 말자고 말한다.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보다 자연의 운명에 충실하자고 말한다. 몸을 주면 태어나고, 건강하면 수고롭게 일하고, 늙으면 편안하게 지내고, 죽으면 편히 쉬는 것이 좋은 것이라 말한다. 이것이 바로 강호의 철학자, 장자의 '아모르 파티(Amor fati)'다.
최상(最上)과 최악(最惡)의 극단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라, 일상(日商)의 평범하고 지속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다가 가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나날인지,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요즘에서야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우리는 유토피아(Utopia)나 디스토피아(Distopia)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평범하고 평안하게 지낼 토피아(Topia)만 있으면 된다.
<첨언> “강호에서 서로를 잊고 살자(相忘於江湖)”라는 말에서 서로를 잊는다는 ‘상망(相忘)’을 서로를 외면하면서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가 편안한 신발을 신으면 신발을 신은 것인지 잊게 되고, 편안한 옷은 입은 것 자체가 의식되지 않는 것처럼, 장자에게 ‘잊음[忘]’은 너무도 편안하여 의식의 영역에 포착되지 않는 상태, 의식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뜻한다. 의식한다는 말은 어색하다는 것이다. 잊는다는 말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교제를 나누는 높은 단계에 도달한다.
<보너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소오강호(笑傲江湖)>의 주제곡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이다. 감상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