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30 : 혼돈이야기

구수한 맛 9 - 멈춰라 착취하는 그 손을

by 김경윤

멈춰라 착취하는 그 손을

남쪽 바다의 임금은 숙입니다. 북쪽 바다의 임금은 홀입니다. 중앙의 임금은 혼돈입니다. 숙과 홀은 가끔 혼돈의 땅으로 찾아와 만났습니다. 혼돈은 그때마다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혼돈의 대접을 보답하고 싶어 숙과 홀이 의논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고 있지요. 그런데 혼돈은 이런 구멍이 없어요, 우리가 구멍을 뚫어줍시다.”

그들은 혼돈에게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주었습니다.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습니다.

- <응제왕> 7

숙(儵)은 ‘갑자기 나타남’이고, 홀(忽)은 ‘홀연히 사라짐’이다. 생성과 소멸, 탄생과 죽음, 있음과 없음을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중앙에 혼돈(混沌)이 산다. 생성도 소멸도 아직 없는 완전한 가능태이자 잠재태가 혼돈이며, 유학적으로 말하면 태극으로 분화되기 전 무극(無極)의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혼돈을 ‘무질서(Chaos)’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차라리 혼돈은 ‘질서-이전(pre-cosmos)’이라 말할 수 있다. 가장 근원적인 상태가 바로 혼돈이다.

유학의 목표는 혼돈에서 질서가 생기는 문명의 세계를 정립하는 것이라면, 도학의 목표는 이러한 문명의 세계가 낳은 폐해를 극복하고 본래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극 → 태극 →음양 → 오행 → 만물의 화살표가 ‘진화’의 모습이라면 그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은 퇴보가 아니라 ‘역진화’의 모습이다. 장자는 문명의 역진화를 상상한다.

역진화는 퇴행이 아니라 돌아감이다. 이전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회개(悔改)라고 한다,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회개다. 낭떠러지로 향하던 진로를 틀어 안전지대로 가는 것이 회개다. 철학적 용어로는 성찰(省察)이며 반성(反省)이다. 무엇하려 회개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놀랍게도 장자 본문의 혼돈은 친절하다. 숙과 홀을 극진히 대접한다. 환대의 세계가 혼돈에 있다.

우리는 지금 문명사회가 만들어놓은 엄청난 폐해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탐욕은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을 말살하고, 인간을 착취하는 불평등사회를 만들어내었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은 이러한 불평등을 유지시키면서 얻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싼 가격의 농수산물은 농민과 어민을 불평등하게 착취한 결과물이다. 가정에서의 안락한 삶은 여성들의 그림자 노동의 결과일 수 있다. 코로나 19와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재해가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말하면 과한 것일까? 인간이 편하려고 뚫어놓은 구멍에서 혼돈(근원적 자연)은 연신 피와 고름을 쏟아내고 있다. 혼돈이 죽으면 질서가 잡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고, 인간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다.

장자는 내편 7편 응제왕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뚫지 마라. 더 이상 파괴하지 마라. 삶의 그라운드(Ground, 근원과 토대)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생하고 멸하는 모든 존재들이여! 멈춰라, 착취하는 그 손을. 혼돈의 환대를 맞이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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